‘교도소 콩밥’ 유래는…열악한 日帝 형무소 생활

‘교도소 콩밥’ 유래는…열악한 日帝 형무소 생활

입력 2012-11-16 00:00
업데이트 2012-11-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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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日강점기 문서 해제집 등 발간

‘쌀 10%, 콩 40%, 좁쌀 50%’.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이 먹었던 밥의 곡식 함유 비율이다. 소위 말하는 ‘교도소 콩밥’이다.

국가기록원은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을 맞아 일제강점기 형무소의 실상을 살필 수 있는 ‘일제문서 해제집(행형편)’을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해제집은 기록원이 입수한 조선총독부의 행형(行刑) 관련 기록물 382권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것으로, 행형제도와 수용시설, 재소자 관리 관련 기록의 생산 연혁과 주요 내용, 역사적 의미 등을 소개했다.

조선총독부 법무국 행형과가 1936~1937년 각 형무소에서 보고받은 재소자들의 식단표를 보면, 서대문형무소 재소자들은 1936년 9월 1~10일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하급미 10%, 콩 40%, 좁쌀 50%로 구성된 ‘콩밥’을 먹었다.

국가기록원 김병남 연구관은 “일제강점기 형무소 생활은 소위 ‘콩밥 먹는다’고 했던 유래가 비롯됐을 정도로 열악했다”고 말했다.

서대문형무소는 1919년 3ㆍ1독립만세운동 이후 수감자가 늘어나자 수용인원 3천여명 규모로 대대적으로 신축됐다. 1945년 해방 때까지 한국의 국권을 되찾으려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수감됐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전국 형무소의 재소자에게 작업수당을 군사헌금으로 헌납할 것으로 독려하기도 했으며, 사상범의 경우 석방 후에도 사법보호제도를 통해 지속적인 통제와 단속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1941년부터는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은 형 집행 종료 후에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황국신민이 되도록 교화선도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내에 예방구금소를 설치, 구금기간을 연장했다.

또 가출옥ㆍ가석방을 활용해 독립운동가들에게 전향서를 쓰라고 강요하면서 통제ㆍ관리하기도 했다.

기록원은 이와 함께 구한말 일제에 항거한 의병의 법정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의병운동 2)’도 발간했다.

기록에 따르면 전북 임실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전수용 의병(1910년 당시 32세)은 법정에서 “일제가 한국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영토를 약탈하려는 것”이라고 항거했지만, 교수형을 당했다.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은 국ㆍ공립 도서관과 관련학계 등에 배포되며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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