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군복 수선…고민 상담…해병 사랑 60년

찢어진 군복 수선…고민 상담…해병 사랑 60년

입력 2012-11-28 00:00
수정 2012-11-2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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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비 ‘해병 할머니’ 하늘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대청도에서 60년 남짓 해병대 장병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멘토 역할을 해온 할머니가 최근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장병들은 지난 24일 할머니의 상여를 메고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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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고(故) 이선비 ‘해병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직접 상여를 메고 장지로 향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지난 24일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고(故) 이선비 ‘해병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직접 상여를 메고 장지로 향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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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비 할머니의 생전 모습.
이선비 할머니의 생전 모습.
지난 22일 87세로 별세한 이선비 할머니는 대청도뿐 아니라 인근 백령도에서 근무한 해병대 장병들까지 모르는 이가 없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이 할머니는 14세 때 대청도로 시집와 섬을 떠난 적이 없다. 해병대가 대청도에 주둔하기 시작한 1951년 어느 날, 낮에는 엿장사와 고물장사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할머니는 한 해병의 군복을 바느질해주면서 해병대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때부터 이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마다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찢어진 군복을 수선해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모든 부대원에게 손수 속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해병 할머니’라고 부르게 됐다.

1981년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육지에 사는 자식들이 함께 살 것을 간곡히 원했지만 “해병대 장병들과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살 것 같다.”며 섬에 남았다.

장병들은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집을 고쳐주고 ‘해병 할머니집’이라는 간판을 만들어 달아주기도 했다.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면서 2010년부터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낸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의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2012-11-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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