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손학규 귀거래사…전남 강진서 ‘셀프유배’

‘자유인’ 손학규 귀거래사…전남 강진서 ‘셀프유배’

입력 2014-08-20 00:00
업데이트 2014-08-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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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마음이 물처럼 고요하다.”

7·30 수원병 보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20일 한 측근과의 통화에서 “잠도 자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산에도 다니고,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전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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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서 칩거 중인 손학규 고문
토굴서 칩거 중인 손학규 고문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굴(흙으로 지은 집)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달 31일 재·보궐선거 패배를 뒤로하고 21년간의 정치인생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손 고문은 10여 일 전 부인과 함께 이 토굴로 내려와 칩거 중이다. 사진은 토굴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는 손 고문.
박동인 제공
손 고문은 전남 강진으로 낙향하기로 결심하고 부인 이윤영 씨와 함께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중턱에 있는 16.5㎡ 남짓의 토굴(흙으로 만든 집)을 임시거처로 삼아 둥지를 튼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이곳에서 머문 뒤 앞으로 지낼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 토굴은 스님들이 한때 사용하다 비워둔 곳으로, 백련사 스님의 소개로 ‘인연’이 닿았다. 전기만 간신히 들어올 뿐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는 곳이다.

TV나 신문 등 ‘세상’과 완전히 절연한 채 백련사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하루에 두번씩 직접 장작을 때며 ‘촌부’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을 찾았던 한 지인은 “손 고문은 외부인을 전혀 만나지 않고 있으며, 길이 험하고 찾기도 어려워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며 “얼굴이 편하고 밝아보여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1993년 정계 입문 후 광명과 수원, 서울 여의도, 마포, 종로, 분당, 독일 그리고 다시 수원 팔달에 이르기까지 21년 정치역정 속에서 수차례 이삿짐을 쌌던 그가 이제는 그 흔적을 모두 내려놓은 채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숨결이 깃든 ‘남도의 땅’에 터를 잡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8년 총선 때 당 대표로서 서울 종로에 ‘구원등판’했다 낙선한 뒤 2년간 춘천에 머무른데 이은 ‘장기 칩거’이다.

손 고문의 ‘강진행’ 결심에는 “강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인의 의견도 감안된 것이라고 한다. 강진은 손 고문 첫째 사위의 고향이기도 하다.

특히 민생 중심의 ‘실사구시’의 정치를 강조했던 손 고문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다산 선생을 세종대왕과 함께 민심을 근본에 둔 정치인의 롤모델로 꼽곤 했다. 이 때문에 야권 주변에선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던 손 고문이 ‘셀프유배’를 떠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실제 손 고문은 다산 선생이 걸었던 옛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고문은 장기적으로는 독일 체류 기간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그간의 정치활동을 돌아보는 저술작업을 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손 고문은 이달초 서울을 떠나기 전 캠프 해단식을 겸해 참모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자유인으로서 잘 놀겠다. 잘 놀 자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 고문은 최근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상황변화에 따라 정계복귀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데 대해서도 “말이 안 되는 소리”, “손학규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펄쩍 뛴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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