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조합원 만들어 의료생협 간판 단 사무장병원

유령 조합원 만들어 의료생협 간판 단 사무장병원

입력 2014-12-10 00:00
업데이트 2014-12-1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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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각지대 해소 취지로 설립… 인가 규정·관리 감독 허술 악용

의료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협력해 만든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이 불법 사무장 병원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 사무장 병원들이 단속을 피하려고 의료생협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는 통에 주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9일 조합원들을 위해 보건·의료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의료생협으로 허가를 받고서 실제로는 사무장 병원을 운영한 의료기관 49곳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5명이 검거돼 1명은 구속됐고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의료생협 병·의원은 지역 주민과 취약계층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의료기관을 말한다. 지역 주민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지역 거점 의료기관을 만들면 의료인이 참여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를 제공한다. 주민이 의료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일반 병원과 다르다.

반면 사무장 병원은 비의료인이 영리 목적으로 의사면허를 대여받아 개설한 불법 의료기관이다. 돈벌이를 위해 과잉 진료를 하는가 하면 요양급여비를 부풀려 주머니를 채우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불법 의료 행위를 해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의료생협 인가 기준이 너무 허술해 ‘무늬만 의료생협’이 양산되기 쉽다는 것이다.

의료생협을 만들려면 최소 조합원 300명을 모집하고 최저출자금 3000만원을 모으면 된다. ‘유령 조합원’은 서류 조작으로 만들 수 있다. 조합원 외에 일반인도 진료할 수 있어 조합원이 없어도 큰 지장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근거 법령이어서 설립 과정에 보건당국의 직접적인 감독도 받지 않는다. 설립 인가는 시·도지사가 하고 의료법에 따라 관할 보건소에 신고만 하면 된다.

이번에 적발돼 구속된 A씨도 거짓으로 서류를 작성해 시청으로부터 의료생협 인가를 받았다. 그러고선 과잉 처방을 하거나 아픈 곳이 없는 간호조무사에게 침을 맞게 해 요양급여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검거된 35명이 부당 청구한 요양급여는 1500억원을 웃돈다.

정부는 의료생협이 사무장 병원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설립 기준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소 조합원 기준을 300명에서 500명으로 올리고, 최저 출자금은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관련법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사무장 병원의 꼼수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서류만 조작하면 유령 조합원 정도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생협 심사를 경제 파트가 아니라 보건의료 정책기관이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4-12-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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