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였다”
작년 말 정국을 뒤흔들었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4일 검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5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작년 12월1일 수사에 뛰어든 지 한 달여 만이다.
지금까지의 수사 추이만으로도 결론의 윤곽은 드러나 있다.
유출 문건의 핵심 내용인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진의 비밀회동설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정씨가 ‘비선실세’로서 청와대 핵심 인사들을 움직여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도 개연성이 희박해졌다.
반대로, ‘7인회’라는 세력이 이런 ‘날조된 의혹’을 공문서에 담아 주도적으로 외부에 유출·유포했다는 의혹도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규명됐다.
언론사에 유포된 청와대 문건은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의 ‘뜻’과 무관하게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경찰관 2명이 빼돌린 것이었다.
다만 박 경정과 상급자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정윤회 문건’ 등 17건을 박지만 EG 회장 측에 별도로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이른바 7인회의 주축 인물로 지목됐지만, 전직 국정원 1급 간부와 모 언론사 간부, 대검 수사관 등이 끼어 있다는 7인회 구성원 전원이 문건 유포 전반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결론은 의혹을 강하게 주장했던 쪽의 입장에선 허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은 야권에서 철저한 규명을 주문했고, 청와대에서는 7인회 의혹을 특별감찰 결과라며 검찰에 전달한 바 있다.
양쪽 모두로부터 ‘칭찬받기 힘든’ 결론이 내려진 셈이다. 사법처리 대상자가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 정보1분실 소속 한모 경위 등에 국한된 점도 양쪽 모두에게는 시원치 않은 결과일 수 있다.
더구나 이 수사는 문건 내용의 허위성과 문건 유출자에 대한 엄벌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수사가이드 라인’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주문과 전혀 딴판의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증거에 입각한 면밀한 수사가 진행됐더라도 정치적 논란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야권에서는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직후 ‘특검론’에 불씨를 지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를 두고 검찰 내에서는 ‘잘해 봤자 본전’인 정치사건 수사의 고충을 또 한 번 체감했다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서 열심히 수사해도 결과로 드러난 양상이나 이를 둘러싼 정치적 득실 때문에 어느 쪽으로부터도 칭찬받지 못하는 상황이 씁쓸하다는 것이다.
이번 수사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의혹은 의혹대로 밝혀야 했던 애로점이 있었다는 의견도 검찰 안에서 나온다.
청와대 비서진이 문건 내용을 보도한 세계일보 측을 고소한 사건에서 수사가 시작됐는데, 고소인인 청와대 비서진을 피의자로 간주하고 증거도 없이 ‘공격적 수사’를 벌이는 건 비례의 원칙을 어길 수 있으므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초 이 사건을 사법의 영역에 끌어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재경 검찰청의 한 중견 검사는 “권력암투 의혹은 본래 사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며 “문건 유출 문제도 청와대에서 관리책임을 묻고 인사로써 다스릴 사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수사팀은 기왕 규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문건 내용이 허위라는 점은 객관적인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내린 결론”이라며 “사법처리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역시 충분한 입증 자료들을 갖고 있어서 공소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검 수사가 진행된다고 해도 결론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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