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선 의원… 3선 개헌 반대 투쟁 앞장… 14·16대 국회의장 역임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4시 35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이만섭 前국회의장 별세 (1932~2015 )](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2/14/SSI_20151214212817_O2.jpg)
![이만섭 前국회의장 별세 (1932~2015 )](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2/14/SSI_20151214212817.jpg)
이만섭 前국회의장 별세 (1932~2015 )
![빈소 찾은 정의화 국회의장](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2/15/SSI_20151215002408_O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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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찾은 정의화 국회의장](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2/15/SSI_20151215002408.jpg)
빈소 찾은 정의화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이 1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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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때 민주자유당 전국구로 다시 원내로 돌아온 이 전 의장은 국회의장의 자리에 올랐다. 93년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재산 공개 파동으로 낙마하자 그 뒤를 이어 입법부 수장에 오른 것이다. 또 그해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97년 신한국당 대표서리였던 이 전 의장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를 지원하며 국민신당에 합류했다. 이후 이 후보의 대선 패배 뒤 98년 9월 6명의 국민신당 의원을 거느리고 여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99년에는 새천년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냈고 그 다음해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16대 국회에서 두 번째 국회의장을 지냈다. 5공 당시 국민당 총재와 97년 대선 이후 국민신당 총재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생활만 했다. 하지만 ‘꼿꼿하고 바른말 잘하는’ 원로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앞선다. 2004년 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아 정계 원로 역할을 다했다.
여야는 이날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새누리당은 “고인은 소신과 뚝심이 강한 강골의 정치인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평가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국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의회주의자였다”고 기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평생 의회주의의 한 길을 걸으신 한국정치의 거목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2녀가 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2015-12-1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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