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윤상직 의원, 민사소송법 개정안 대표발의가해자가 받는 판결서에 피해자 이름·집 주소 삭제 방안 담겨
“저는 1995년생 올해로 23살인 여성입니다. 저는 2019년 8월 5일에 보복 살해를 당할 예정입니다.”지난해 10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글을 올린 A씨는 21살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매니저에게 회식 자리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승소했으나 판결문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집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모두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 8월 출소하는) 가해자에게 송달된 판결문에도 제집 주소와 주민번호 13자리가 쓰여 있다”며 “혹시 몰라서 개명도 했으나 (가해자의 보복으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몰라 미리 유서도 써놓은 상태”라고 민사소송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A씨처럼 성범죄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인적 사항이 그대로 노출돼 보복 범죄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일을 없애기 위한 민사소송법 개정이 추진된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은 범죄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피해자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9일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가 고소장을 가명으로 제출할 수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인적 사항을 보호받는다.
그러나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소송 당사자(원고)가 되기 때문에 인적 사항을 모두 적어야만 소장을 접수할 수 있다.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신원이 확실해야 집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범죄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가해자가 받는 소장과 판결문에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등이 기재된다. 이에 따라 보복 범죄의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번에 제출된 법안은 범죄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때는 법원 직권 또는 피해자(원고)의 요청에 따라 판결서에 기재된 피해자 성명·주소 등 신원을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리고 송달하도록 했다.
윤 의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 정보가 공개되다 보니 소송 자체를 포기하거나 가해자의 출소를 앞두고 보폭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많았다”며 “법 개정을 통해 신원 노출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복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 A씨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성범죄 피해자의 집 주소·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판결문을 가해자에게 송달하는 행위를 금지해달라는 글을 올려 지금까지 25만7천명이 넘는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리한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지난해 국회를 중심으로 일었으나 아직 구체적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작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손해배상청구 소송 소장과 준비서면을 가해자에게 송달할 때 이름, 주소 등 신원정보 전부 또는 일부를 가릴 수 있도록 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검토보고서를 통해 “피고의 방어권을 제약할 우려도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고,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만약 박 의원과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병합 심사돼 국회를 통과한다면 소장, 준비서면, 판결문에서 모두 피해자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저는 명백한 피해를 받았고 그에 대한 피해 보상 또는 위자료를 청구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왜 이런 두려움에 떨어야 할까요?”라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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