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발암물질’ 알면서도 “땀 나서”, “시야를 가려서”, “답답해서”
사흘째 계속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사흘째 발령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네거리 인근 도로가 미세먼지로 온통 뿌옇다. 2019.1.1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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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수도권에 사흘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5일, 도시가 흑백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최악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지만 야외 작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생업을 위해 미세먼지와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일부는 일에 방해된다며 최소한의 보호 장치인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의 한 고물상에서는 화물차에 실려 온 파지와 고물 등을 분류하느라 작업자들이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고물상 사무실 안 젊은 직원은 마스크를 썼지만, 비교적 나이가 많은 야외 작업자들은 오히려 마스크를 쓰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느냐는 말에 야외 작업자 황모(64)씨는 “땀이 뻘뻘 나는데 번거롭게 마스크를 어떻게 쓰냐”며 “미세먼지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하는데 당장 작업이 불편하면 안 되니 마스크를 쓸 수가 없다. 이 나이에 무슨 건강 걱정이냐”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업을 이어갔다.
고물상 인근 자동차 정비업소의 엔지니어 양모(48)씨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은 공기가 안 좋고 또 어떤 날은 좋고 그런 것 아니냐”며 “늘 밖에서 일하니 사실 미세먼지가 짙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종묘 앞 공원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전화를 기다리던 퀵서비스 기사 추모(60) 씨는 “마스크를 쓰고 오토바이를 몰면 답답해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잘 쓰지 않는다. 이제는 익숙하다”면서도 “당장 드러나진 않지만 미세먼지가 건강에 나쁘다고 하니 운전하는 날이면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관악구의 한 주요소에서 근무하는 김모(62)씨는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안경에 김이 서리면 주유기가 잘 보이지 않아 쓸 수가 없다”며 “종일 미세먼지를 맞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미세먼지에 대비해 단단히 채비를 갖춘 근무자도 많았다.
서울 송파구에서 건물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김모(24)씨는 “종일 밖에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꼭 마스크를 쓴다”며 “요즘에는 공기가 너무 안 좋다 보니 눈이 뻐근하고 마스크를 써도 코가 막힌다”고 말했다.
종로5가역 근처 가판대를 운영하는 임모(71)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가판대 창문을 꽁꽁 닫고 마스크까지 쓴다”며 “마스크를 쓰면 숨쉬기도 불편하고, 안경에도 자꾸 김이 서리지만 공기가 안 좋은 날엔 목이 칼칼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임씨는 그러면서 “사흘 내 미세먼지가 심한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더 답답해지는 것 같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야외 작업자들은 미세먼지를 전혀 피하지 못하다 보니 몸 상태가 악화하는 일도 다반사다.
주차요원 서모(29)씨는 “마스크를 쓰기는 해도 워낙 미세먼지가 심해서인지 두통이 생겼다”며 “요즘에는 피로감도 더 심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북아현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 박모(68)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눈과 목이 아프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경비실 안에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국역 인근에서 만난 야쿠르트 판매원 A씨는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마스크를 써도 몇 시간만 일한 뒤 코를 풀면 까만 먼지가 묻어나고 잔기침도 많이 난다”며 “겨울이면 날이 추운 데다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니 밖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바깥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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