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치매노모 돌보던 길금자씨, 장기기증으로 4명 생명 살려

103세 치매노모 돌보던 길금자씨, 장기기증으로 4명 생명 살려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23-05-24 11:53
수정 2023-05-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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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전날 의식 잃고 쓰러져 뇌사상태
축하하러 온 가족들 병상의 길씨 보고 황망
103세 노모와 거동 불편 친척 돌보며
이웃과 반찬 나눔, 홀몸 어르신 김장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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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 치매 노모를 돌보던 길금자(67)씨가 지난 11일 뇌사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103세 치매 노모를 돌보던 길금자(67)씨가 지난 11일 뇌사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103세 노모를 돌보던 60대 여성이 뇌사장기기증으로 4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쓰러진 날은 생일 하루 전이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24일 뇌사상태였던 길금자(67)씨가 지난 11일 인하대병원에서 신장과 간장, 좌·우 안구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길 씨는 지난달 23일 외출했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이송된 뒤 뇌사 상태에 빠졌다. 길씨의 생일잔치를 위해 모인 가족들은 생일날 병상에 누운 길씨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유족에 따르면 길씨는 충남 금산에서 4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도와 동생 5명을 챙기며 어려운 가정을 함께 꾸렸다. 103세 어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자 집으로 모셔 돌봤고, 이웃에 사는 친척이 건강 악화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15년 넘게 식사와 집안일을 돕기도 했다.

길씨 자신도 젊은 시절 연탄을 갈다 몸 전체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인공관절로 거동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눔과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반찬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김장을 해드렸다. 가족들은 길씨가 평소 “죽으면 흙으로 가는데 마지막 떠나는 길에 기증을 통해 다른 이를 살리고 싶다”고 했다며 그 뜻을 따라 고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딸 이주하씨는 “엄마 딸로 47년을 살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본인이 아프고 힘든 것을 알기에 주변의 사람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보살핀 길금자씨의 따뜻한 삶에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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