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마음의 병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마음의 병

입력 2012-08-27 00:00
수정 201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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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떠밀린 탓이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세상과의 불화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시대가 그를 버렸고, 그런 세상에 그는 자유로움과 분방함으로 답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저술 ‘홍길동전’을 통해 보건대 조선 전 시대를 통틀어 그처럼 치열했고, 순정했으며, 그래서 더욱 불온했던 사상가는 흔치 않았다. 허난설헌을 누이로 둔 허균 말이다.

막힌 세상이 답답했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외로워서 한사코 침잠했다. 그 무량한 침잠의 끝에서 그가 만난 꿈은 홍길동이었다. 한번에 백장을 날고, 제 몸을 수백개로 나눠 손바닥 뒤집듯 출몰하는 홍길동은 조선사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힐책, 그 서슬에 주눅든 민초들의 흉금에 밴 저항의식의 상징이었다. 조선 중기의 문인 기자헌은 허균이 역모의 덫에 걸려 목이 달아난 뒤 이렇게 술회했다. “예로부터 죄인을 신문하지 않고, 사형을 결정한 문서도 없이 감당 못할 형을 가해 얻은 진술만 믿고 목숨을 끊은 적이 없었다. 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형장에서 식은 방귀를 끼고 말았지만, 왕조의 적폐는 그가 극복해야 할 필생의 과업이었고, 그래서 그는 문약한 선비가 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수단으로 맞섰다. 홍길동을 통해 현실권력을 징치하는 해원의 담론을 제시했고, 절대왕권을 부정하는 해체적 대안으로서의 새 나라 건국이라는 파괴적 창조를 시도했다. 그의 뜻은 서책의 문장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망상이라기엔 너무나 절절한 외침이었다.

세상과의 불화 때문에 낙담으로 끼니를 삼는 사람이 어찌 그 시절의 허균 뿐이겠는가. 승자독식의 세상은 수많은 패자를 양산하고 있고, 극단적인 양극화는 세상을 ‘모든 것을 가진 소수’와 ‘아무것도 못 가진 다수’로 구획했다. 그런 세상에 갖힌 수많은 사람들이 허균의 길을 가고 있다. 그 비운의 세월이 더러는 생애를 집어삼키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마음의 병이 때로는 불꽃이 되기도 하거늘, 낙담한 채로만 살 일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이 중요하지만 오로지 그것으로 우리들 삶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jeshim@seoul.co.kr



2012-08-2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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