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8억 뇌물 뿌리며 3조원대 사기대출 ‘돌려막기’

모뉴엘 8억 뇌물 뿌리며 3조원대 사기대출 ‘돌려막기’

입력 2015-01-25 10:36
수정 2015-01-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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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PC 가격 100배 뻥튀기 허위수출…국책 금융기관 상대 전방위 로비

지난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파문을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엘은 광범위하고 끈질긴 뇌물공세로 천문학적 규모의 사기대출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모뉴엘은 가짜 서류로 7년 동안 3조4천억원의 불법대출을 일으켰다. 국책 금융기관과 세무당국·거래업체를 상대로 쓴 로비자금은 8억원을 넘었다.

모뉴엘의 대출사기·금품로비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김범기 부장검사)는 모뉴엘 박홍석(53) 대표와 신모(50) 부사장, 강모(43) 재무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추가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들 경영진은 1조2천억원대 허위 수출입신고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모뉴엘에서 재무이사로 일하다가 화물운송 주선업체를 차린 조모(47)씨도 사기대출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표 등은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홈시어터 컴퓨터(HTPC) 가격을 부풀려 허위 수출하고 수출대금 채권을 판매하는 등의 수법으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4천억원을 불법 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모뉴엘은 채권 상환기한이 다가오면 또다른 허위수출을 꾸미는 수법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은행들이 아직 받지 못한 대출금은 5천500억원에 달한다. 모뉴엘은 허위 수출입거래를 전부 매출과 순이익에 포함시켜 2조7천억원 상당의 분식회계 혐의도 있다.

모뉴엘은 1대당 시중가격 8천∼2만원인 HTPC를 200만∼300만원까지 뻥튀기해 수출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위해 실사를 나오면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꾸몄다.

모뉴엘은 KT 자회사인 KT ENS를 통해 허위수출을 하다가 여신규모가 점점 늘어나자 직접 허위수출에 나섰다. 기존 거래규모를 유지하고 무역보험 및 수출금융 한도를 늘리기 위해 전방위 금품공세를 폈다.

모뉴엘은 KT ENS와 무역보험공사·한국수출입은행의 담당자 10명에게 각종 편의를 부탁하며 뒷돈을 건넸다. 조계륭(61·구속기소)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퇴직 후에도 정기적으로 금품을 챙기며 ‘로비스트’ 노릇을 했다. 모뉴엘은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불법자금을 감추려고 세무공무원에게도 뇌물을 줬다.

검찰은 작년 10월 미국으로 도주한 전 무역보험공사 영업총괄부장 정모(48·기소중지)씨가 모뉴엘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미국 사법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정씨는 2009년 모뉴엘 담당 팀장으로 일하면서 박 대표와 친분을 쌓았고 2013년부터 1억1천8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박 대표가 이들에게 뿌린 돈은 총 8억600만원에 달한다. 금품로비에는 500만∼1천만원짜리 기프트카드(선불카드)가 주로 쓰였다. 담뱃갑과 과자·와인·티슈 상자에 기프트카드나 5만원권 현금을 채워 건넸다. 강남 유흥주점에서 접대하면서 하룻밤에 1천200만원을 쓰기도 했다.

뇌물공세는 2012년을 전후로 집중됐고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무역보험공사가 책정한 보험한도는 2011년 8천800만달러(약 952억원)에서 2013년 2억8천700만달러(약 3천106억원)로 뛰었다. 수출입은행도 여신한도를 2011년 40억원에서 지난해 1천131억원까지 늘려줬다.

검찰은 모뉴엘이 수출장려를 위해 도입된 무역보험 제도를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질적 심사 없이 보증한도를 계속 늘려주는 운영의 허점도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국책 금융기관 일부 임직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제도의 근본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관계기관의 제도 개선에 협력하고 유사한 무역금융 비리를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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