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년’ 조현아, 판사가 말하는 동안…

‘징역 1년’ 조현아, 판사가 말하는 동안…

입력 2015-02-12 19:13
수정 2015-02-12 19:2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한 손으로 입 막은 채 계속 눈물 흘려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핵심 쟁점이었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항공기가 실질적으로 17m만 이동했고, 항로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로까지 항로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로변경죄가 인정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미지 확대
호송 차량 속 조현아
호송 차량 속 조현아 ‘땅콩 회항’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는 호송 차량 안에서 조 전 부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 오성우)는 12일 선고공판에서 “항공보안법 제42조 항로변경은 공로(空路)뿐만 아니라 이륙 전 지상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며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로변경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최소 형량을 선고한 셈이다. 재판부는 “출발을 위해 푸시백(탑승 게이트에서 견인차를 이용해 뒤로 이동하는 것)을 시작했다가 정지하고, 박창진 사무장을 내리게 한 뒤 출발한 것은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 항로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운항 중인지 몰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내방송과 좌석 벨트 등이 켜진 점 등을 통해 출발 준비를 마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출발했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도 항공기를 세우게 한 점, 다른 일등석 승객도 운항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볼 때 항공기 항로변경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국토부 조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조 전 부사장과 여모 상무가 공모해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게 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태도와 인식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오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떨어뜨린 사건”이라고 규정한 뒤 “비행 서비스와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을 땅콩과 관련한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한 것은 승객 안전을 볼모로 한 지극히 위험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현재 수감 생활 중인) 조 전 부사장의 고통의 무게보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가 훨씬 무겁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근무에 어려움 없도록 대책을 수립한다고 했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한 박 사무장에게 조직 내에서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김모(여) 승무원과 박 사무장이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 진술도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큰 이벤트가 필요한데, 공개 사과를 하는 데 협조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김 승무원의 증언과 조 전 부사장이 이 사건의 발단 원인을 (여전히) 승무원들의 매뉴얼 위반 때문이라고 하는 점을 보면 (조 전 부사장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이 초범이고, 향후 사회 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수 있는 데다 20개월 된 쌍둥이를 둔 어머니인 점을 고려해 형을 결정했다”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은 최근까지 재판부에 모두 6장의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의를 입고 출석한 조 전 부사장은 1시간가량 진행된 공판 내내 두 손을 모은 채 초조함을 드러냈다. 앞선 공판에서 줄곧 고개를 숙였던 것과는 달리 이날 선고공판에서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든 채 재판을 지켜봤다. 조 전 부사장은 재판부가 자신이 제출한 반성문을 읽을 때는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특히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던 순간, 조 전 부사장은 나지막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쪽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이 자신이 쓴 반성문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얼굴을 양손에 묻고 흐느꼈다. 5m 떨어진 방청객 앞줄에서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일 최후 진술에서는 “엄마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저의 아이들에게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기 바란다”여 읍소하기도 했다.

선고 전 오 부장판사는 조 전 부사장이 쓴 반성문 일부를 읽었다. 조 전 부사장은 반성문에 “제 잘못을 알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정말 미안하다. 상처들이 가급적 빨리 낫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해야 용서가 될지 모르겠다”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가 여기(구치소) 오지 않았더라면 낯선 이의 손길을 고맙게 여길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30일간 제게 주어진 건 두루마리 휴지, 수저, 비누, 내의, 양말 두 켤레가 전부였는데 주위 분들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샴푸, 린스 등을 빌려주고 과자도 내어주어 고마웠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