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으로 바뀔 형사 재판 모습은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9. 5. 16.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 개정안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최대 변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헷갈립니다. 도대체 검찰과 경찰, 누구 말이 맞는걸까요. 형사재판의 종결자, 판사들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가 기소하는 사건을 재판하는 판사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요.
●부장판사 “판사가 법정에서 증인 이야기 직접 들어야”
“사실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전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솔직히 그동안 판사들이 검찰 조서 덕분에 편했죠. 70~80년대 공안 사건 구습이 현재까지 계속된 거에요. 피고인의 인권과는 아무 상관 없고 검찰의 편의를 위한 악습이죠.”(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제 그럼 검찰 조서가 경찰 조서처럼 되는 건가요? 그럼 피고인이 부동의하면 판사가 조서를 못 보겠네요. 물론 판사 입장에서는 같은 법조인인 검사 말이 더 믿음이 가죠. 그런데 판사들이 지난해 사법농단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 조서를 어떻게 만드는지 봤잖아요. 말한대로 만들지 않고 검사의 의도에 맞게 작성된다는거죠. 공판중심주의 원칙을 고려해도 판사가 증인을 법정으로 불러서 직접 들어보는게 맞아요.”(지방법원 부장판사)
수사권 조정안의 대상이 되는 경찰(왼쪽)과 검찰. 연합뉴스
패스트트랙안대로 수사권 조정이 되면 검찰 조서도 피고인이 동의할 때만 증거능력을 얻게 됩니다. 검찰이 자백을 받아도 소용 없게 된거죠. 속된 말로 검찰 조서의 ‘끗발’이 떨어지는 겁니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한 경찰은 “검찰 조서가 경찰 조서보다 더 인정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전세계 어느 나라도 경찰과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법원행정처 “검사와 경찰 조서 증거능력 차별 어디도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 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에 대해 “검찰로서는 우려를 표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판 중심주의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 사법체계가 그 단계까지 충분히 준비돼 있느냐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원 등 다양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과 관련해서는 법원과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증거능력을 낮추는 것이 방향으로 봐서 맞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검찰 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해야하는 방향은 맞는데, 법원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는거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다만 판사들은 형사재판이 장기화되고, 소송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법농단으로 재판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검찰이 작성한 판사들의 진술조서에 부동의했습니다. 결국 판사 수십명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봐야하니까 당연히 재판은 길어집니다. 구속 만기 6개월이 지났는데 법원은 이제 막 증인 신문을 시작했고, 결국 다른 혐의로 구속영장을 또 발부했습니다. 피고인 임 전 차장 입장에서는 구속 기간이 길어지고 변호사 수임료 등 소송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단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한 판사의 말을 들려드립니다.
“법정에서 검찰 조서를 부인하는 피고인 대부분이 ‘저런 취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만약 검찰이 피고인이 말한 그대로 조서를 만들었다면 부동의하지 않고 할 수도 없겠죠. 형사소송법 개정이 검찰 수사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검사의 의도나 방향대로 끌고 가지 말고, 피고인이 말한대로 조서를 만들면 피고인이 굳이 부동의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