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부와 밤에…76살 노인의 ‘엉뚱한 죽음’

젊은 과부와 밤에…76살 노인의 ‘엉뚱한 죽음’

입력 2015-05-21 18:42
수정 2015-05-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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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1. 노익장 76세 노인의 엉뚱한 죽음…수상한 살인강도 신고를 캐봤더니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1. 노익장 76세 노인의 엉뚱한 죽음…수상한 살인강도 신고를 캐봤더니
(선데이서울 1973년 2월 11일)

살인강도 사건으로 위장된 한 노인의 죽음 뒤에는 너무나 뜻밖의 사실이 깔려 있었다. 76살의 노인이 47살의 과부와 잠자리를 함께 하다 별안간 숨이 끊어졌다는 것. 노인이 죽자 젊은(?) 과부는 부끄럽고 겁에 질려 그만 거짓 신고를 했다는 것인데….

 

1973년 1월 25일 밤 10시 55분쯤. 서울북부서 숙직 데스크 앞으로 걸려온 한 여인의 전화 목소리는 겁에 질려 있었다.

여인의 신고내용은 살인강도 사건이었다. 사건 현장은 서울 성북구 수유동 모 복덕방 안. 형사들이 긴장하여 달려간 것은 물론. 현장에는 복덕방 주인 오상준(76·가명)노인이 세수수건으로 목이 졸려 숨진 채 이불로 푹 덮여 있었다.

방안의 캐비닛 서랍이 열려 있고 손금고가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신고자 장미정(47·가명)은 이날 밤 10시 50분쯤 평소 안면이 있는 오노인을 찾아갔다가 숨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현장에서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경찰은 죽은 오노인과 연관 있는 사람은 모두 불러 진술을 받기 시작했다.

신고자 장여인이 고인과 정을 통해 온 사이라는 의외의 사실이 미망인 김숙녀 노파(65·가명)의 진술로 밝혀졌다. 이불로 시체의 얼굴을 덮은 사실, 방문을 밖에서 연 사실, 강도가 들어온 듯한 기척을 전혀 못 느꼈다는 이웃의 증언 등으로 오노인과 친면이 있는 사람의 범행이라고 추리한 경찰은 일단 장여인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그녀의 알리바이를 비밀리에 조사했다.

 

●경제적 도움받다 가까이…부끄럽고 겁나 거짓 신고

 

이웃의 진술로는 이날 밤 10시 50분쯤 복덕방에서 손뼉을 치며 “할아버지가 목 졸려 죽었다”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는데 경찰로서는 장여인의 태도가 허풍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경찰이 조사한 장여인의 알리바이와 그녀가 진술한 알리바이가 어긋났다.

경찰은 이 사실을 들이대며 장여인을 추궁, 30일 오전 10시 그녀로부터 일체의 자백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건 내용은 너무나 엉뚱한 것이어서 취조 경찰관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장여인이 오노인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4월 중순쯤 복덕방 옆에 ‘초가집’이라는 무허가 대폿집을 경영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이웃 복덕방 노인으로 대해 오다가 돈이 아쉬울 때면 오노인에게 달려가 꾸어올 정도로 친분이 두터워졌고 꾼 돈을 갚으려고 하면 오노인은 번번이 천천히 갚으라고 받지를 않았다.

장여인이 오노인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오는 사이 둘은 점점 가까워져 지난해 7월부터 남모르게 정을 통해 오는 사이가 됐다. 장여인은 새해 들어 대폿집 경영이 부진하자 장사를 걷어치우고 지난달 7일 대한화재보험 서부영업소 외무사원으로 취직했다.

사건 당일 저녁 8시쯤 장여인은 오노인과 수유동에 있는 음식점 ‘그 집’에서 순두부백반과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8시 45분쯤 오노인은 먼저 귀가하고 뒤따라 장여인도 복덕방으로 찾아갔다.

장여인은 복덕방 뒷문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들치고 오노인 옆에 누웠다. 얼마 동안 장여인과 뒤엉킨 오노인이 갑자기 뻣뻣해지면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옆으로 쓰러졌다. 장여인은 겁이 덜컥 났다. 오노인의 가슴과 목을 한참 주물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강도가 침입했던 것으로 위장할 생각을 해냈다.

 

●딸만 셋 낳자 아들 아쉬워 얻은 소실 9명

 

장씨는 오노인의 목을 세수수건으로 묶고 방을 흩트려 놓은 뒤 이웃 유정다방에 찾아갔다. 수양언니 김모여인에게 “영감님이 집에 계시지 않아 방 청소를 해 놓고 왔다”면서 “영감님을 누가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허풍을 떨었다.

장여인은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수유동 여관으로 갔다가 밤 10시 50분쯤 되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장여인은 여고를 나왔으며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살에 결혼, 슬하에 6남매를 낳아 단란한 생활을 해 오다 7년 전 은행에 다니던 남편과 사별했다.

장여인에 의하면 사건 당일에도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이미 한번 잠자리를 같이 했으며 저녁을 먹고 와 두 번째로 불꽃을 튀기다 변을 당했다는 것.

오노인은 본처와의 사이에 딸만 셋을 낳고 아들이 없자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며 9명의 소실을 얻어 들여 편력했었다는 게 본처 김노파의 말. 아무튼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풀려나간 사건을 놓고 경찰은 장여인이 무죄냐 유죄냐로 한때 고민. 오노인의 사인(死因)이 장여인의 말대로 복상사냐 또는 목을 죈 것이냐로 가려지는 것은 법의학 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장여인은 사인이야 어떻든 ‘자기 잘못이다’며 체념한 표정이었다.

정리=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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