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한류를 폐하라/김상연 정치부 차장

[오늘의 눈] 한류를 폐하라/김상연 정치부 차장

입력 2010-02-26 00:00
수정 2010-02-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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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는 지금쯤 어디를 정복하고 있을까. 일본과 중국을 강타하고 동남아시아를 휩쓴 데 이어 중앙아시아를 유린하고 동유럽의 교두보인 헝가리를 공략 중이다. 풍문이 아니다. 우리 외교관들의 ‘전황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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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저 옛날 헝가리를 점령하고 서쪽 유럽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던 몽골제국이 수백년을 거슬러 환생한 것일까. 아니, 한류는 이 공전(空前)의 제국보다 넓은 영토를 벌써 잠식하고 있다. 유럽의 동남쪽 끄트머리인 그리스가 사정권에 들어왔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도 한창 정복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칭기즈칸의 못다 이룬 꿈을 대리하기 위해 말발굽을 높이 치켜들고 “오 한류, 오 한류”를 외치면서 최후의 고지인 서구를 공포에 떨게 해야 할까.

제발 진정하고 말발굽을 차분하게 내려놓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한 처신이라고 외국인을 자주 접하는 식자(識者)들은 진언한다. 문화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역지사지해 보라는 것이다. ‘한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을 피동태(被動態)화하기 때문에 우리 입으로 자꾸 말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지는 단어다. 일류(日流), 중류(中流)라는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끼린데 뭐 어때.’는 아니다. 지구가 좁아져 뉴스가 실시간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다.

한류에 우쭐해서 문화적 우월감(이건 열등감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어글리 코리안’으로 전락한다. 동남아 등지에서 일부 한국인 공장주의 인권유린이나 한국인 여행객의 추태는 자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쩌라는 말인가. 조용히 하자는 것이다. 정부도, 연예계도, 교수도, 언론도 한류란 말을 떠벌리는 걸 삼가야 한다. 한국 문화를 애호하는 소비자들을 존중하는 심성이 한류본색(本色)이다. 이를 간과하면 한류는 유럽의 문턱에서 말발굽을 돌렸던 몽골제국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carlos@seoul.co.kr
2010-02-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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