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연꽃과 정치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연꽃과 정치인/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0-07-12 00:00
수정 2010-07-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저기 바다에 떠있는 게 연꽃 아니냐. 저렇게 큰 연꽃은 처음이다. 저 연꽃을 건져 와라.” 연꽃 속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심청이 고운 자태로 나타난다. 바닷속 용왕이 아버지 심봉사를 만나려는 심청을 연꽃에 태워 육지로 보낸 것이다. 우리 민족 심성에 살아 있는 고전 ‘심청전’의 한 장면이다.

연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을 받아 왔다. ‘심청전’에서 연꽃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나중에 화려하게 부활한 심청의 화신(化身)이다. ‘춘향전’에서는 춘향의 청초한 모습을 물속에 핀 연꽃에 비유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침 이슬 머금고 함초롬히 핀 연꽃이 청순한 춘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으리라. 또한 연꽃은 전통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에서 예술로 승화돼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인도, 중국의 전설 등에서도 연꽃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고대 인도에서 연꽃은 다산(多産), 힘과 생명의 창조 등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여겼다. 서양인들의 연꽃 사랑도 이에 못지 않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모네가 말년에 그린 대작 ‘수련’이다. 인상주의파의 거장 모네는 자신이 살던 집 연못에 수련을 심고 화폭에 담아내 ‘수련’ 연작(連作)을 완성했다. 86년 생애 중 마지막 30여년을 ‘수련’ 연작에만 온힘을 쏟아부은 것을 보면 모네의 연꽃 사랑은 대단했다.

최근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여년 만에 싹을 틔우고 활짝 꽃을 피워 화제가 되었다. 그 오랜 시공을 뛰어넘는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꽃은 불교에서 가장 대접받는 꽃이기도 하다. 진흙투성이 연못에서 자라지만 정작 자신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부처를 닮았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다 보니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연꽃이 애꿎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랫사람들의 빗나간 충성심 때문에 청와대와 독립기념관 연못에 있던 연꽃을 모두 뽑아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총리실 민간사찰 의혹 사건을 보면서 대통령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엉뚱하게 ‘세상의 연꽃’을 뽑아 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특히 여권 내 혼탁한 권력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이전투구 진흙탕이 따로 없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 송이 연꽃을 품으라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0-07-12 3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