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조강지처/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씨줄날줄] 조강지처/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입력 2011-05-23 00:00
수정 2011-05-2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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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호텔 객실 청소원을 성폭행하려다 구금된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보석허가를 받고 풀려났다. 맨해튼 소재 아파트에 머물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됐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스트로스칸이 이 악몽에서 벗어난다면 최고급 변호인단이 아니라 강인한 마음을 가진 부인 생클레르의 덕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클레르는 “단 1초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 사람, 최근 가정부와의 사이에 14살 아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부인 슈라이버와 별거 중이며 이혼 위기에 놓였다. 슈워제네거의 성추문은 끊임없었고, 2003년 주지사 선거 당시에도 있었다. 하지만 슈라이버는 “남편의 결백을 믿는다.”며 루머 진화에 나섰고, 결국 재선까지 성공시켰다.

이런 추문에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백악관 인턴직원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클린턴은 탄핵안이 하원에서 통과되는 등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자서전에서 “남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밝혔으나 클린턴을 살린 것도 부인 힐러리의 ‘용서’였다. ‘역시 조강지처뿐’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남편의 명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높은 부인이라도 용서는 ‘사랑’이 아닌 ‘야망’으로 매도되는 것 같다. 힐러리는 ‘남편의 부정을 참아내며 권력을 추구한 야심만만한 여성’이란 말을 들어야만 했고, 슈라이버 역시 케네디가(家) 출신이라 체면을 지키려고 살았다고 한다. 생클레르도 남편 대통령 만들기 열혈녀 정도로 묘사된다. 이 역시 여성에 대한 편견이자 남성중심적 사고가 아닐까. 남편의 외도는 유명한 여성이나 명문가 출신이라고 해서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가정을 깨지 않은 채 서로를 이용하는 ‘트로피 부부’도 있다 한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남의 마음을 유혹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방송진행자 출신의 생클레르가 성범죄피의자 남편의 법정에서 보여준 굳은 표정은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강지처란 지게미 조(糟), 쌀겨 강(糠)으로 어렵게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한 본처(本妻)를 일컫는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는 이런 추문이 별로 없다.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아도 혼인의 순결만은 해치지 않은 때문일까.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조강지처들이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깨지 않으려 참고 있어서 허리띠 아래의 추문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2011-05-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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