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窓] 의미 있는 고통/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생명의 窓] 의미 있는 고통/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입력 2014-02-08 00:00
업데이트 2014-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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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많이 받으세요!”와 함께 새해 인사로 가장 많이 주고받는 덕담은 “건강하세요!”일 것이다. 올 초 발표된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81.4세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아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수명’은 아직 66세에 멈춰 있다고 하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각종 성인병, 암, 치매 등으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말년의 ‘골골 15년’을 보내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노년층의 가장 큰 걱정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고통받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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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눈에 작은 티끌만 들어가도 아프고 괴로운 게 우리 몸이다. 건강할 때는 아프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만일 우리 몸에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없다면 상처가 나거나 질병으로 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모르게 돼 상처는 곪아버리고 병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우리 몸의 이상 발생을 곧바로 확인시켜 주는 훌륭한 경고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은 환자는 물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에게도 커다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지 며칠 후,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가셨던 아버지는 원폭 피해 복구를 위해 맨몸으로 동원되었다고 하셨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원인 모를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셨고, 마침내 심한 천식과 합병증으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59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다. 의사가 됐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해드릴 것이 없다는 무력감으로 인해 아버지를 뵙고 돌아올 때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저녁이면 더 숨이 멈출 것 같은 기침과 이로 인한 가슴의 통증으로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깨어 있는 시간이 더 많으셨기에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와 나는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조금씩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 담화’가 시작된 후 아버지의 고통은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고 몇 달 뒤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자식의 마음은 한없이 안타까웠지만 오랫동안 닫혀 있던 부자간의 마음을 열어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게 했던 새벽녘의 그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도 보고 싶던 외아들의 손을 맞잡고 정을 나눴던 그때가 평생을 짊어지고 온 고통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천수를 누리고 고통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하고, 의학적으로도 가능하면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라는 것을 어느 누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고통은 회피해야만 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가. 정채봉 작가와의 대화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사람에게 고통이 없으면 몸만 자라고 마음은 자라지 않겠지요. 고통 속에도 기쁨이 있다고 믿으며 이겨 내는 것이 참 인간의 길입니다”라고 하셨다. 과연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위안을 느끼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버지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그 새벽의 시간들이 새삼 떠오른다.
2014-02-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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