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벤치만 보였다”… 트럼프 112일 만의 선거유세 흥행 참패

“파란 벤치만 보였다”… 트럼프 112일 만의 선거유세 흥행 참패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20-06-21 21:56
수정 2020-06-22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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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 처음 열린 털사 유세 현장

100만명 예상… 2만석 중 3분의1 비어
흑인 시위·주류 언론·방역당국 등 공격
“좌파 꼭두각시 바이든” “쿵 플루” 막말
“코로나 검사 줄여라” 방역 부정발언 논란
캠프 6명 확진에도 거리두기 잘 안 지켜
NYT “트럼프, 관중 수 적어 격분했다”
텅 빈 파란색 물결… 노예해방일 하루 뒤 유세
텅 빈 파란색 물결… 노예해방일 하루 뒤 유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저녁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재개한 재선 유세에서 위층 대부분이 텅 비어 파란색 의자들만 보이는 관중석을 뒤로한 채 연설하고 있다. 본래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19일 유세를 하려 했지만 흑인 사회의 반발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날은 텍사스에서 마지막 노예가 해방됐던 노예해방일이고, 털사는 99년 전 백인들에 의해 흑인 대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털사 AP 연합뉴스
‘트럼프가 파란색 물결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첫 사망자 발생 이후 112일 만인 2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유세 현장.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인지 100만명이 입장 신청을 했다는 사전 공언과 달리 2만석 규모의 센터는 3분의1이나 텅 비었다. 미 언론은 현장의 의자 색깔이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임을 빗대 트럼프의 위기를 이같이 묘사했다. 기대와 달리 참석이 저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BOK센터 밖에서 시민들을 만나기로 했던 일정도 취소했다.

그는 이날 100분 남짓한 유세 연설 내내 코로나19와 인종차별 시위 등으로 촉발된 갈등에 상처 입은 민심을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로 다독이기는커녕 흑인 시위대와 주류 언론, 중국은 물론 방역 당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등에게까지 전방위로 ‘싸움’을 걸고 분열과 분노의 언어를 쏟아냈다.

트럼프의 첫 일성은 지지자들을 둘러보며 한 “당신들은 (나의) 전사들이다”라는 나긋한 말이었다. 그러더니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일어선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를 “혼란에 빠진 좌익 폭도”라고 몰아붙이고, “우리의 유산을 파괴하고 새로운 폭압적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며 “바이든은 과격 좌파의 무기력한 꼭두각시”라고 퍼부어 댔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경합주에서 승기를 잡은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달 정치자금 8080만 달러(약 977억원)를 모으며 트럼프(7400만 달러) 대통령을 앞섰다. 트럼프의 언어가 점점 독해지는 이유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저녁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재개한 재선 유세에서 텅 빈 관중석에 홀로 앉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휴대폰으로 유세 장면을 찍는 모습. 털사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저녁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재개한 재선 유세에서 텅 빈 관중석에 홀로 앉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휴대폰으로 유세 장면을 찍는 모습.
털사 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재선을 구걸했다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그것이 일어난 방)의 핵폭탄급 폭로를 의식한 듯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해 거듭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코로나19를 ‘쿵 플루’(Kung Flu)로 부르겠다”며 인종차별적 언어를 구사했다. 이는 중국 무술인 ‘쿵후’와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플루’(인플루엔자)를 합성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대규모 실내 집회를 감행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검사 속도를 늦추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그는 “진단검사는 양날의 검이다. 진단검사를 하면 더 많은 (확진) 사람들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내가 (방역 당국에) 진단검사를 제발 줄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유세 직후 한 행정부 관료가 “대통령 말은 분명 농담”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누적 확진자가 233만명에 달하는 상황인데 여전히 국민 보건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발언이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행사를 준비한 트럼프 캠프 관계자 중에서 6명이 무더기로 감염됐음에도 유세장 방역은 허술했다. 입장 때 마스크를 배포하고 체온을 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엄격히 지켜지지 않았고, 마스크를 낀 참석자도 드물었다. 가디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플래카드를 든 사람이 마스크를 쓴 사람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2명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실내 유세장의 관중이 적었던 것에 대해 크게 격분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 캠프의 기대와 달리 이날 유세 규모는 굴욕”이라고 꼬집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2020-06-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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