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생가 매물로 나와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생가 매물로 나와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6-26 12:23
수정 2020-06-27 06:5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시 중심가에 있는 체 게바라의 생가.그는 1928년 넉넉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AFP 자료사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시 중심가에 있는 체 게바라의 생가.그는 1928년 넉넉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AFP 자료사진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 처형돼 비밀 장소에 묻혔다가 1997년 젊은 날 혁명에 모든 것을 바쳤던 쿠바 땅에 다시 묻혔다. AFP 자료사진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 처형돼 비밀 장소에 묻혔다가 1997년 젊은 날 혁명에 모든 것을 바쳤던 쿠바 땅에 다시 묻혔다.
AFP 자료사진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가 태어난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생가가 매각된다.

현재 소유주인 아르헨티나 기업인 프란시스코 파루지아는 2002년 시 한복판에 있는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건물에 자리한 240㎡ 면적의 아파트를 사들여 문화센터로 꾸미려했는데 실현되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26일 전했다. 그는 얼마를 받고 싶은지 액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1967년 세상을 떠나 53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혁명 정신으로 올곧은 삶을 살아낸 영웅을 기리며 생가를 찾는 이들이 많다. 호세 페페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쿠바 혁명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의 자녀들도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생가를 찾았던 인물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이는 1952년 젊은 의사이던 체 게바라와 함께 모터사이클로 8개월 동안 남미 대륙을 일주한 알베르토 그라나도스였다.

체 게바라는 1928년 넉넉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남미 여행을 통해 빈곤과 굶주림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급진 사상에 빠져들었다. 그 뒤 1953년부터 1959년까지 진행된 쿠바 공산혁명에 가담해 풀젠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켰다. 그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남미와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혁명을 수출해야 한다고 확신해 볼리비아로 건너가 르네 바리엔토스 오르투노 대통령 정부에 맞서는 반군 게릴라 활동을 이끌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볼리비아 군대에 동지들과 함께 체포됐고, 1967년 10월 9일 라 히구에라란 마을에서 처형당한 뒤 비밀 장소에 매장됐다. 그의 주검은 30년이 지난 1997년 발굴돼 화장된 뒤 쿠바로 옮겨져 재매장됐다.

생전에도 그렇고 사후 반세기가 흘렀는데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조금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그가 혁명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자신을 철저히 희생했다고 보는 반면, 비판적인 이들은 잔인무도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