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운성 작가 디지로그 풍경展
“정말?” “진짜로 봤다니깐!” 밥자리에서, 술자리에서 늘 하는 얘기다. ‘봤다’는 시각적 우위는 목소리만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세부적 묘사가 따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를 한다 해도 진짜 봤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이거 좀 골치 아프다.오이아 호텔, 산토리니, 2011
여주아울렛, 2012
작업할 때 처음으로 실물이 아닌 사진을 앞에다 두고 그렸다. “저야 르네상스 이래 오랜 회화의 전통, 사물을 눈앞에 보고 그리는 그림을 배웠고 그렸고 가르쳤지요. 그래서 이해를 못 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뭘 그리라고 하면 노트북에서 검색하고 이미지를 출력해 그리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그래도 화가는 그러는 게 아니라고 말리고 야단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말리고 야단쳤던 ‘그 짓’을 자기가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몇 해 전 영국 남부 브라이턴대를 잠시 갔을 때 대학 측에서 올드십 호텔을 잡아 줬는데, 그게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삐걱대고 아귀도 안 맞고. 그래도 공식적인 대학 간 교류 행사였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하나 싶어 언짢았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돌아와서 얘길 들어 보니 2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엄청 대단한 호텔이었던 거예요. 그쪽으로선 최선을 다한 칙사 대접이었던 거죠. 제대로 본다는 게 뭔가 싶더군요.”
그 전부터 정년이 임박하면서 방학 때면 늘 유럽을 헤집고 다녔다. 자유로운 유럽 여행, 일반인도 군침 흘릴 법하지만 서양 미술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사다. 안 가본 곳 없이 구석구석 다니려다 보니 비용이 만만찮았다. 결국 이용할 수 있는 건 패키지 여행이었다. “값이 싸고요. 그 다음 재빠르게 보여줄 곳은 다 보여 줘요. 그래서 좋긴 한데, 그러고 나니까 사진밖에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렇게 그렸다. “사실 어떤 기념비적인 공간을 잘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는 뒤편이에요. 뒤편에서 전체를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무얼 봤다는 것은 보통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지요. 우르르 가서 찍는데 그 공간이 어떤 깊이와 색깔과 냄새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는 거죠.” 무대세트처럼 파사드만 살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가설물로 지지된 공간으로 묘사된 그림은 그렇게 나왔다.
건물이 사각 프레임에 맞춰 딱딱 끊어진 것도 사진 프레임을 고스란히 가져와서다. 봤다지만 우리가 본 것은 딱 그 프레임뿐이지 않으냐는 얘기다. “어디 어디 유명하다는 곳을 가면 가이드는 몇분 시간을 준다, 사진 찍으라 하곤 휙 가버려요. 그렇게 보고 사진 찍어 오면, 그게 우리가 가 본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패턴화된 껍질만 주워 들고 오는 것일까요.” 미니홈피니 블로그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니 하는 곳에서 넘쳐 나는 온갖 인증샷들. “거의 모든 것이 그냥 하나의 무대가 돼 버린 우리 세상”에 대한 얘기를 건네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가 롯데월드, 여주 아울렛, 에버랜드처럼 철저히 상업적으로 기획된 공간을 함께 그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아주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과연 가 본 것인가. (02)732-4677.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2-20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