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우리 정치노선은 ‘복음노선’이죠”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우리 정치노선은 ‘복음노선’이죠”

입력 2014-09-17 00:00
수정 2014-09-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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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이라는 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붙인 거죠. 정치 노선을 표방한 적도 없고 특정 계파를 따르지도 않습니다. 굳이 노선을 따지자면 ‘복음 노선’이라 할까요.”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16일 서울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 대표 나승구(51) 신부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복음’이었다. 사제단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제로 사는 사람들이 복음정신에 따라 그 정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하는 거죠. 복음에 근거해 시대의 요청을 성찰하고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는 느슨한 사제공동체라고 하면 될까요. 사제단 개념을 정의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그해 9월26일 강원도 원주에서 결성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사제의 양심에 입각해 교회 안에서 복음화 운동을, 사회에서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활동하자는 목적이었다.

일사불란한 조직을 갖췄을 것 같은 사제단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회원 명부도, 회칙도 없다. 상설 조직도 상임위원회와 대표뿐이다.

”사안별로 뜻을 같이해서 오는 신부들이 바로 사제단입니다. 명단도 없어요. 그때그때 방명록에 이름 남긴 사제들한테 다음에 일이 있으면 소식을 전합니다. 사안에 동의하면 나오는 거죠.”

사람 나이로 치면 불혹인 4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사제단이 사회 민주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보수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 아니냐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 실천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것, 시대를 살아가는 사제들의 정신을 새롭게 정화시킨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제들만 모이다 보니 태생적 한계도 있습니다. 천주교 전체를 통 크게 끌어안는 건 부족했습니다. 사제들만의 시각이어서 때론 편협할 수도 있구요.”

’정의’ 구현을 추구하는 단체의 대표가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다르겠죠. 끊임없이 찾고 밝혀서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하는 겁니다. 어느 한쪽과 일치하는 편협한 정의가 아니고 하느님 뜻이 세상에 옳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확실한 건 복음에 기초한 정의, 공동선이라는 정의, 인간존중이란 정의입니다.”

사제단의 설립 목적과 활동 방향은 가난한 교회와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생각과도 통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의가 모든 정치의 목적이며 고유한 판단 기준이라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또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둬야 한다고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다. 종교는 국가 사회생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지난 8월 교황의 방한에 사제단도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교황은 예수의 사명을 명확하게 실천했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분명하게 복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걸 보면서 부럽고 부끄러웠습니다. 하느님 정의를 얘기하면서 세상의 반대와 반응을 미리 계산한 적이 없는지 반성하는 계기였어요.”

사제단은 지난 8월25일부터 9월4일까지 세월호 참사 유족이 농성 중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기도회를 열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아픔이자 갈등 요인인 세월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아주 중요한 계기입니다. 흙탕물을 뒤집어써서 옷이 더럽혀지면 목욕도 하고 빨래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죠. 힘들고 귀찮다고 안 하려는 걸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 신부는 사제단 비판의 단골 소재인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 논란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북한의 인권 탄압과 주민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기도와 고민을 왜 안 하겠습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채널은 유지해야 기회가 오면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사이가 나쁜 이웃집 아저씨한테 왜 아이를 학대하냐고 하면 과연 아이한테 도움이 될까요? 북한 인권을 너무나 쉽게 말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인권을 위하는 것인지 살필 줄 아는 지혜가 아쉽니다.”

KAL 858기 폭파 사건에 관한 의혹 제기 논란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하자는 얘기였어요. 수많은 의혹이 있고 가족들도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안기부는 사건의 실체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세월도 참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년에 접어든 사제단의 앞날과 활동 계획에 대한 구상을 물었다.

”최근 4∼5년 동안 사제단이 주로 한 일은 누구를 선동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준 거였어요. 용산참사 유족, 쌍용차 희생자 유족과 해고노동자 유족 곁을 지켰습니다.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우리의 비전입니다.”

사제단 신부들은 왠지 성격이 다부지고 과격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대부분 신부들이 여려요. 감정적이고 감수성도 예민하구요. 누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그냥 내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거죠.”

나 신부도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한 신부는 “고요하고 겸손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질기고 항구하고 단호하다”고 전했다.

1991년 사제가 된 뒤 줄곧 사제단 활동을 해 왔다. 지금은 장위1동 선교본당 주임신부를 맡고 있다. 서울대교구청 근무와 신월동성당 주임신부를 마치고 빈민사목을 자원했다. 선교본당은 일반 성당과 달리 가정집 거실이 성당이고, 거기에 딸린 조그만 방 하나가 사제관이다.

나 신부는 “창립 때부터 사제단과 함께하시다 지난해 돌아가신 안승길 신부님이라고 계세요. 누추한 병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어요. 세상 눈으로 보면 실패한 삶이죠. 그분이 사제단 활동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다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세상 가치가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게 사제단 40년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제단은 오는 22일 명동성당에서 40주년 감사미사와 심포지엄을 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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