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획두획… 역사를 담고 신념을 말하다

한획두획… 역사를 담고 신념을 말하다

입력 2010-07-23 00:00
업데이트 2010-07-2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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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100년 특별전 ‘붓길, 역사의 길’ 친일·항일 인물 등 70여명 필적 한자리에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했다.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아 인격과 성정이 서체에 고스란히 배어난다는 뜻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특별전으로 23일 개막하는 ‘붓 길, 역사의 길’은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 흥미로운 기획이다. 망국의 시기를 전후해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한 주역들의 필적을 통해 근현대사의 굴곡을 반추하겠다는 자못 야심찬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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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남긴 ‘홍익인간’ 휘호(위). 서체가 단단하고 강직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60년에 남긴 신년 휘호(오른쪽). ‘사람은 학식이 있어야 생각과 말이 자연히 높고 밝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남긴 ‘홍익인간’ 휘호(위). 서체가 단단하고 강직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60년에 남긴 신년 휘호(오른쪽). ‘사람은 학식이 있어야 생각과 말이 자연히 높고 밝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획두획… 역사를 담고 신념을 말하다

척사와 개화, 매국과 순절, 친일과 항일 등 역사의 굽이마다 대척 관계에 섰던 인물 70여명의 필적 100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이를 테면 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에 차운(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시를 지음)을 한 박제순, 조중응 등 을사오적과 이와 정반대 입장에서 순절을 택한 민영환, 안중근 등 애국지사의 필적을 대비하는 식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글씨는 그 사람인 동시에 그 인물이 생존한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라면서 “필적이야말로 사회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증언하는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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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에 친일파 김윤식, 조중응, 박제순이 답시를 덧붙였다.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왼쪽).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검찰관에게 써 준 작품.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지사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오른쪽).
이토 히로부미의 칠언시에 친일파 김윤식, 조중응, 박제순이 답시를 덧붙였다.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왼쪽).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검찰관에게 써 준 작품.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지사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오른쪽).
일례로 이토 히로부미가 1908년 5월 귀국을 앞두고 쓴 칠언시는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당시 매국에 앞장섰던 인물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토 히로부미가 ‘뭇 사람들과 헤어지자니 더욱 더 아쉬워/고운 얼굴에 흰 머리는 바로 신선들이다/교린의 기월이 맹단에 남아 있으니/양국에 화기가 오랫동안 맴돌리라’는 칠언시를 쓰자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조중응은 ‘동풍에 돛을 달아 귀국하시고 나서도/큰 꿈이 이따금 접역에서 뒤척이시라’는 답시를 썼다.

박제순은 ‘세상에 우뚝 선 풍모는 스스로 탁월하셔서/물러나 쉬는 즐거운 곳에서 신선이 되시었네’라며 낯뜨거운 찬양가를 덧붙였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은 초대 일왕인 신무를 기리는 칠언절구를 남겼다.

반면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명함에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저승에서 기뻐 웃으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옥중에서 ‘국가안위 노심초사’라는 명필을 남겼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22일 “이완용은 서체에 변화가 심해 상황에 따라 성정이나 기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반면 안중근은 송곳 같고 칼 같은 필체로 직필(直筆)의 표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해방 공간에서 남북공동정부 수립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놓고 대립했던 김구와 이승만의 필체도 뚜렷이 구분된다. 김구는 차돌처럼 단단하고 강직한 서체인 데 비해 이승만은 서체가 부드러워 자유주의자로서의 기질이 드러난다는 평이다.

이 밖에 흥선대원군의 ‘묵란’, 민영익이 상해 망명 당시 기거했던 집인 천심죽재를 그린 그림, 갑신정변의 4인방 필적, 만해선사와 여운형의 필적 등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들이 상당수다.

문창국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부장은 “이번 전시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망국·분단·통일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3부작 시리즈의 하나로, 내년 초 분단과 통일을 다룬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8월31일까지. (02)580-1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0-07-2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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