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강제동원 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햇살’

독립운동·강제동원 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햇살’

입력 2013-11-19 00:00
수정 2013-11-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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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록물 관리에 ‘구멍’ 노출…시스템 정비 시급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주일대사관에서 이관받아 19일 공개한 일제강점기 피해 관련 문서는 우리 민족의 저항과 박해의 역사를 규명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처럼 중요한 자료를 주일대사관과 정부 당국이 오랜기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정부의 기록물 관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어떤 자료 나왔나

공개된 자료는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 운동시 피살자 명부(217쪽 짜리 1권·630명)’와 ‘일본 진재(震災·간토대지진을 지칭)시 피살자 명부(109쪽짜리 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천781명)’ 등 총 67권이다.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12월15일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다.

이들 자료는 일본과의 식민지 배상 협상때 사용키 위해 작성, 주일대사관으로 이관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 1952년 2월 제1차 한일회담 결렬 후 1953년 4월의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가기록원은 밝혔다.

◇최초의 3·1운동 순국자 명단…유공자 입증에 기여할듯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총 630명의 명단을 담고 있어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적시된 피살자 수(7천509명)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숫자지만 국내외 통틀어 최초 발견된 피살자 명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국가기록원은 전했다.

특히 일부지역의 경우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향후 독립유공자 선정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3·1운동 순국자 중에서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된 숫자는 총 391명에 불과했기에 추가로 유공자로 인정받는 이들이 잇따를 전망이다.

예를 들어 이번 명부에 포함된 3·1운동 피살자 중 경기도 거주자가 169명인데 이들 중 이제까지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은 사람은 53명에 불과했고, 포상이 보류된 경우가 8명이었다. 결국 이번 자료를 통해 100여명의 피살자들이 새 증빙자료를 확보하게 됐다.

◇간토대지진 피살자 일부 신원 최초 공개

아울러 간토(關東)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최초로 확인된 관련 문서라는 점에 더해 자료의 상세함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국가기록원은 평가했다.

1923년 9월1일 발발한 간토 대지진(규모 7.9)을 계기로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이 사건과 관련, 당시 우리 임시정부는 사망자 수를 6천명 정도로 추정한 점에 비춰 이번에 발견된 290명은 숫자면에서 미미하다.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을 한국에서 조사한데 따른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망자의 신상명세 외에 피살 일시, 장소, 상황 등에다 학살방식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향후 관련 연구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살해된 형태의 경우 ‘피살’, ‘타살’, ‘총살’, ‘경찰서 유치장에서 순국’ 등과 같은 다양한 표현으로 기재됐다. 피살이 아닌 ‘지진으로 사망’한 사례도 일부 포함됐다.

피해 사례 중 경남 합천군 이씨 집안 일가족 4명 학살 사례는 당시의 잔학상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며, ‘일본 헌병에 의한 총살’ 사례는 일본 공권력이 학살에 개입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된다.

◇국내에서 작성된 最古 강제동원 명부 발견…새로운 이름 ‘수두룩’

가장 분량이 많은 일정시 피징용(징병 포함)자 명부는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작성한 것으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추정된다. 당시 복사기술 등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일 협상을 위해 원본 통째로 주일대사관에 옮긴 셈이다.

이 자료는 그간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1957년 만든 ‘왜정시피징용자명부’가 있고 여기에 이번에 발견된 숫자보다 많은 28만5천771명이 등재돼 있지만 명부에 생년월일, 주소 등이 기재돼 있지 않은 탓에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피징용·징병자로 인정한 숫자는 약 16만명에 그쳤다.

그런 만큼 종전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 주소 등이 포함돼 있는 이번 자료는 피해자 보상심의를 위한 사실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에 발견된 명부 중 경북 경산 지역의 피징용·징병자 명단에는 기존 명부에 없는 새로운 이름 1천여명이 나왔다. 세부 분석을 거치면 상당수 징용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될 전망이다.

◇한계와 향후 과제

국가기록원은 관련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에 제공,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자료는 한국 정부가 전쟁 와중에 주민들의 자진신고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확인 및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또 새로운 강제동원 및 독립운동 관련 증빙 자료가 발견된 만큼 기존에 입증을 못해 정부 지원을 못받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률정비를 서둘러야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제정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조사 및 지원 위원회는 올해말이면 활동시한이 만료된다. 결국 시급히 여야 합의로 법을 개정, 활동시한을 늘리거나 새로운 지원 법률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더불어 전쟁통에 조사 및 문서이관이 이뤄졌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수십년 간 한국 정부와 주일대사관이 자료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 만큼 과거 문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정부의 문서관리 체제 정비도 과제로 떠올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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