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매립 파장] “그날 이후 건강 악화… 유독물질 여전할 것”

[고엽제 매립 파장] “그날 이후 건강 악화… 유독물질 여전할 것”

입력 2011-05-20 00:00
수정 2011-05-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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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어느 날 도시 한 블록 규모의 땅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군대 상관들) 그냥 처리할 게 있다면서 도랑을 파라고 했다. 파묻은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기억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

그 물건은 고엽제였다. 1978년 경북 칠곡군 왜관 일대에 위치한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근무했던 스티브 하우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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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이 1978년 경상북도 칠곡의 캠프 캐럴에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물질을 묻었다는 당시 주한미군 세 사람의 증언을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도한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KPHO-TV가 함께 공개한 증언자들의 캠프 캐럴 근무 당시 사진. 구체적인 병사들의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 KPHO-TV 웹사이트
주한 미군이 1978년 경상북도 칠곡의 캠프 캐럴에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물질을 묻었다는 당시 주한미군 세 사람의 증언을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도한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KPHO-TV가 함께 공개한 증언자들의 캠프 캐럴 근무 당시 사진. 구체적인 병사들의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
KPHO-TV 웹사이트




●암 유발 다이옥신 포함된 듯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지역 방송인 KPHO-TV는 주한미군 3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이 캠프 캐럴 인근에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묻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시 하우스는 뭔가 처분할 용도로 쓸 배수로를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하우스가 묻은 것은 55갤런(약 208ℓ) 크기의 밝은 노란색 드럼통이었다.

드럼통엔 ‘베트남 지역, 컴파운드 오렌지’라고 적혀 있었다. 컴파운드 오렌지 혹은 에이전트 오렌지로 불리는 이 물질은 미군이 베트남 전쟁 동안 울창한 정글을 없애기 위해 사용했던 유독성 제초제 고엽제다. 유독물질인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으며 각종 암과 신경장애, 기형아 출산 등을 일으킨다. 하우스는 당뇨와 신경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미군 당국은 베트남 전쟁 종전 뒤 남은 에이전트 오렌지를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쓰고 나머지는 바다에 소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美교수 “독극물 제거 50년 걸려”

다른 병사들도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하우스와 같이 복무했던 로버트 트라비스는 “창고에 드럼통이 약 250개 있었다. 우리가 하나하나 창고 밖으로 날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새어나온 물질에 잠깐 노출됐는데 이후 온몸에 붉은 발진이 생겼고 관절염이 생기는 등 건강이 점차 악화됐다.

일리노이주 디케이터에 사는 리처드 크래머의 증언도 두 사람과 일치한다. 그는 화학물질을 묻던 당시 갑자기 발이 마비돼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는 두 달 동안 군 병원에서 치료받고 괜찮아졌지만 10년 뒤 여러 질병이 다시 발생했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발목과 발가락이 붓고 만성적인 관절염이 생겼다. 또 눈과 귀에도 이상이 생겼다.

방송은 에이전트 오렌지 노출이 이 군인들을 병들게 했다면 버린 지점 근처에 사는 한국인들 또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라비스는 “우리는 실험용 쥐로 쓰였다. 유독물질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 교수 피터 폭스는 지하수 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오염된 지하수가 관개 등에 쓰였다면 오염물질이 음식물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지역을 정화할 유일한 방법은 모든 물을 뽑아내는 것”이라며 “이런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데 5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1-05-2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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