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일가, 비 내리는 검찰청서 ‘사죄·송구’

전두환 일가, 비 내리는 검찰청서 ‘사죄·송구’

입력 2013-09-10 00:00
업데이트 2013-09-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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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등등했던 18년전 연희동 ‘골목성명’과 대조돼

전두환(82)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54)씨가 탄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은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10일 오후 2시 59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 앞에 멈춰 섰다.

쿠데타와 군사 독재, 부정 축재와 비자금 은닉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한 생애를 내려놓고 전씨와 그 일가가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는 역사의 무대로 재국씨는 걸어나왔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재국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포토라인 앞에 서서 잠시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어 미리 준비한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A4 1장짜리 사과문을 읽었다.

재국씨는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로 시작해 납부키로 한 재산 목록을 나열하고 다시 “사죄드린다”로 끝나는 사과문을 2분 남짓 읽어내렸다.

재국씨는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과를 전하는 목소리에 긴장이 서렸다. 힘겹게 사과문 낭독을 마친 그는 취재진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국씨는 “왜 돈을 돌려주기로 했느냐, 훔친 돈이기 때문인가” 등 기자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검찰 특별환수팀을 찾아 납부 계획을 밝힌 뒤 오후 5시께 취재진 질의에 응하기로 했다.

재국씨는 전씨 일가 대표 자격으로 이날 검찰에 출두했다. 추징 당사자인 전씨는 건강이 나쁘고 돌발 상황에 따른 경호 문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취재진은 전날 오후부터 중앙지검 앞 도로를 따라 중계차량 10여대를 세워놓고 취재 경쟁을 벌였다. 재국씨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몰려 청사 현관이 북새통을 이뤘다.

전과 달리 5·18 관련 단체 등의 기습 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어두운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내린 재국씨는 18년 전 ‘골목 성명’ 당시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전씨와 대조됐다.

전씨는 내란수괴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인 1995년 12월 2일 서울 연희동 사저 앞 골목에서 검찰 소환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2쪽 분량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측근 10여명을 대동한 전씨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겨냥해 “여당이 쿠데타 세력과 야합했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앞서 전씨는 퇴임 9개월 만인 1988년 11월 2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통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공언한 뒤 강원도 백담사로 은둔해 13개월간 지내기도 했다.

이후 1997년 4월 17일 역사적인 판결 확정과 16년 뒤 검찰의 환수 노력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전씨와 그 일가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는 9천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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