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 놓고 진보·보수 ‘힘겨루기’

교학사 교과서 놓고 진보·보수 ‘힘겨루기’

입력 2013-09-02 00:00
수정 2013-09-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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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 역사학자들이 집필했다고 해서 출간되기도 전에 거센 논란에 휘말린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지난달 30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검정심의에서 최종 합격 판정을 받았다.

교과서 들어보이는 유기홍 의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을 비롯한 야당 교문위원들이 2일 국회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 역사학자들이 집필했다고 해서 출간되기도 전에 거센 논란에 휘말린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들어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과서 들어보이는 유기홍 의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을 비롯한 야당 교문위원들이 2일 국회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 역사학자들이 집필했다고 해서 출간되기도 전에 거센 논란에 휘말린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들어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교과서는 일부 드러난 내용을 놓고 진보진영에서 역사적 사실 관계를 축소·왜곡했다고 공격하고 보수진영에서는 진보의 추측성 음해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며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등 이미 진보·보수의 대리전(戰) 공간이 되고 있다.

국편은 2일 최종 합격한 다른 7종의 교과서와 함께 이 교과서의 열람을 허용할 예정이다.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가 베일을 벗으면 그 내용을 놓고 진보와 보수 간의 논쟁이 격화할 전망이다.

◇진보진영 “왜곡”…보수진영 “균형”

아직 교과서 전체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국편의 수정·보완 권고 사항과 국회의원들이 입수해 공개한 내용을 살펴보면 대강의 내용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쿠데타에 대해서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라면서도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로 기술한 부분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5·16 쿠데타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쪽으로 편향적 사실 관계를 열거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내용이다.

해당 교과서는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당시에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미국의 소리>) 방송을 함으로써 국민들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꾀한 1972년 10월 유신도 “비상 체제인 동시에 독재였다”면서도 그 불가피성을 강조해 박 전 대통령의 과(過)보다는 공(功)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정권의 평가에 대해서도 노태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주로 눈에 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진보진영에서는 기존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됐다고 비판해온 한국현대사학회 출신 학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근현대사나 북한 문제에 대해 우편향적인 시각을 담았다고 보고 있다.

야당도 합세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5·16 쿠데타를 미화한 측면이 있고, 5·18 민주화운동에서 군부 발포사실도 누락했다”면서 “또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보수, 진보 진영에 따라 편향적으로 집필한 부분 때문에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하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대해 “검정 합격을 취소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같은 날 구두논평에서 “교과서는 전문가인 학자들이 학문적 시각을 담아 기술하고, 위원회도 최종 통과하기까지 철저히 심의했을 것”이라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역사관이 투영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 대변인은 “어느 한 쪽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라며 진보진영에서 가하는 공격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해당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반박 및 해명자료를 내고 “일부 언론들의 추측성 음해가 중지되지 않고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16 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 역대정권의 평가에 대한 기술에서 이 교과서가 우편향 됐다는 지적에 대해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일일이 해명한 뒤 현재 이 교과서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이 잘못되고 왜곡된 선전선동이라고 규정했다.

◇내년 3월 일선 고교 채택 앞두고 논란 커질 듯

다양한 관점을 가진 교과서가 나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국정 교과서 대신에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채택한 것은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는 차원이었다.

관점이나 해석을 달리하는 역사 교과서들에 대해 서로 비판하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들은 기존 교과서들이 좌편향 됐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쓴 교과서가 검정심의를 통과해 제도권으로 들어온 지금에는 우편향 됐다는 비판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 관계를 비틀어 자신의 역사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진보진영에서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비판하고 아예 합격을 취소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면 논란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명확해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교과서가 논란에 휩싸이면 휩싸일수록 교과서 채택률은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등 과거사를 왜곡했던 일본 후소샤(扶桑社)의 교과서의 채택률은 2001년 0.039%, 2005년 0.4%, 2009년 11월 1.7%에 불과했다. 일선 학교에선 논란이 되는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인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이 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공세를 취하고 반대로 보수진영에서는 어느 쪽이 더 진실된 서술을 하는지 학교와 사회가 판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논란의 수위를 낮추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내년 3월부터 일선 학교에서 활용되는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 여부를 놓고 진보와 보수 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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