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어머니 손’의 약리성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어머니 손’의 약리성

입력 2012-03-19 00:00
수정 201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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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억, 배앓이로 진땀을 흘리는 저를 가만히 눕혀놓고 살살 배를 만져주시던 어머니의 잘 굽힌 누룽지 같은 얼굴이 생각납니다. 시골에서 낳고 자란 농투성이 코흘리개들 소싯적에 횟배앓이는 흔한 일상사였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배통이를 까놓고는 사알∼살 어루만져 주셨지요. 그럴 때면 구들의 온기가 전신에 퍼져 이내 잠에 빠지곤 했는데, 그렇게 다디단 토막잠을 자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배앓이가 가시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농삿일로 거친 손바닥에 무슨 대단한 신통력이 깃들었겠습니까만, 배앓이든 두통이든, 아니면 달음질로 알 박힌 종아리든 어머니 손에만 닿으면 통증이 풀어져 이윽고 나른한 안온함에 이르곤 했습니다. 인체는 스스로 강력한 진통제를 만들어냅니다. 의학자들이 말하는 내인성 아편유사제가 그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엔돌핀이나 엔도모르핀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우리가 느끼기는 어렵지만 이런 내인성 아편유사제는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모르핀보다 훨씬 진통효과가 강하며, 효과도 지속적입니다. 사실, 인체는 복잡한 유기체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시로 다양한 통증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 아픔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내인성 아편유사제 때문입니다. 이 성분이 통증을 씻어내 정작 자신의 아픔을 못 느끼며 사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손바닥을 통해 신체의 특정 부위에 자극을 가하면 이런 내인성 아편유사제의 분비가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체는 자극에 반응하는데, 그 반응에는 아편유사제의 분비도 당연히 포함되지요.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손의 자극이 침의 자극보다 강하답니다. 되짚어 보자니, 이런 진통작용을 평생 계속하는 사람의 몸이 참으로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애틋한 손길에도 과학적인 약리성이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약리성이 곧 사랑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또한 약리성을 발현시키는 촉매이기도 한 것이니, 꼭 어머니 손이 아니더라도 사랑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약이요, 치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무리 줘도 사랑은 결코 과분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jeshim@seoul.co.kr



2012-03-1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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