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시간근로자 바우만의 경우
“그렇게 살면 행복한가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네요.”스티븐 바우만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옆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만난 스티븐 바우만(45)은 세계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긴 한국의 노동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제 노동자의 삶에 대해 질문하자 대답보다 한국인은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지, 그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질문을 더 많이 내놓았다. 한 시간가량 나눈 대화 중 바우만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행복’이었다.
바우만을 만난 날은 평일인 목요일 오후 5시였다. 인근 호텔에서 예약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바우만은 전일제 노동자 대비 60%의 시간만 일한다. 호텔 업무의 특성상 일이 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출근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 중 하루만 선택해 일한다. 이날은 낮에 스키를 즐겼고 오후 7시 친구들과의 파티가 있어 일찍 나와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바우만은 2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주 5일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노동 시간을 줄였다. 호텔 측도 일이 별로 없는 평일 노동을 줄임으로써 비용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는 게 바우만의 설명이다.
바우만은 늘어난 여가 시간에는 주로 등산과 스키, 자전거 타기 등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줄인 근무 시간만큼 당연히 수입도 줄었지만 생활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고 지금의 생활이 2년 전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내가 다시 전일제 근무를 신청하면 받아 줄 준비가 돼 있다”면서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기업 전체가 시간제와 전일제 근무 간 전환이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바우만은 “당신을 포함한 한국 국민들이 일이 아닌 개인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고 공유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며 약속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취리히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4-01-1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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