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 출마자 떨어지면 다시 오세요”
직원이 공직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져도 다시 받아주겠다는 직장이 있다. 선거운동하라며 아예 휴직까지 보장한다. 그것도 유급 휴직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희한한 규정을 20년 넘게 방치한 조직이 있다. 은행연합회 얘기다.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은행연합회에 대한 종합감사를 벌여 이런 사실을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날 공개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직원이 공직 선거에 입후보할 경우 석 달간 유급휴직(급여의 25% 지급)을 보장하도록 사규에 명시했다. 심지어 이런 유급휴직 카드를 재임기간 중 두 번이나 쓸 수 있게 했다. 1983년 설립된 은행연합회는 법적으로는 민간기구이지만 공적 성격이 강한 은행들이 회원사여서 금융 당국의 감사를 받게 돼 있다.
은행연합회는 상식 밖의 규정임을 시인하면서도 실제 적용 사례는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다. 은행연합회 측은 “설립 초창기 때인 1980년대에 생겨난 규정”이라면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데다 실제 적용된 사례도 없어 다들 무심코 넘겼다”고 털어놓았다. 은행연합회 감사의 직무유기이자 ‘낙하산 감사’의 한계라는 비판도 크다. 정병기·이정하 전·현 감사는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다. 자체 감사팀도 이런 규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김창권 은행연합회 감사실장은 “현안 위주로 감사하다 보니 규정까지는 미처 세세히 살피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은행연합회는 임원 출장 때 배우자 경비 지급도 ‘고무줄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필요한 경우 배우자를 동반할 수 있고 이 경우 실비를 지급한다’고 돼 있지만 ‘필요한 경우’의 세부 요건을 명기하지 않아 자의적 해석이 스며들 여지를 둔 것이다.
연합회 측은 “이 규정도 전임 회장 때 딱 한번 적용됐다”면서 “문제가 된 규정들은 즉각 시정하고 자녀 학자금 지원 등 ‘과잉 복지’ 관련은 노조와 협의해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특목고를 다니는 자녀는 물론 의대·치대를 다니는 대학생 자녀에게도 금액에 상관없이 학자금을 전액 지원해 왔다. 금융위는 연합회가 사무실 환경 조성 명목으로 해마다 수천만원을 들여 예술품을 사들인 데 대해서는 ‘기관주의’ 조치를 내렸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2014-08-25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