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냐 기회냐… 미중 ‘칩 전쟁’에 K반도체 딜레마

위기냐 기회냐… 미중 ‘칩 전쟁’에 K반도체 딜레마

강주리 기자
입력 2023-05-23 23:52
수정 2023-05-23 23:5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中점유율 확대 속 美 시장은 악재
WSJ “한국, 미묘한 상황에 처해”

이미지 확대
마주 본 美부통령과 대만TSMC 회장
마주 본 美부통령과 대만TSMC 회장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서 열린 ‘반도체 리더십 정상회의’에 참석한 류더인(오른쪽) 대만 반도체기업 TSMC 회장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지난 21일 단행한 자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재에 맞서 “동맹국들과 협력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니베일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자국 내 마이크론 제재는 한국 반도체 산업계에 ‘호재’가 될 수도, ‘악재’로 돌변할 수도 있는 조치로 평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엔 ‘위기 요인’일 수도, ‘기회 요인’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반도체 산업 정책을 세우는 정부 입장에선 ‘냉정’을 유지하며 관전하기도, ‘열정’을 갖고 적극 대응하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재 조치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중국이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을 제재한 뒤 한국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나온 대체적인 평가들이다. 미중 간 경쟁이지만, 중국이 마이크론을 대체해 반도체를 공급받을 최적의 대상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꼽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양국에 반도체 수출을 하는 동시에 반도체 공장도 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샌드위치 신세가 된 꼴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판매금지 제재에 대해 “한국이 미묘한 상황에 처했다”면서 “중국 내 마이크론의 문제를 한국의 삼성전자과 SK하이닉스가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 업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마이크론 (판매)금지 조치가 중국의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미국 및 동맹국과의 공급망 격차가 더 벌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 확대
지정학적 고려 없이 본다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내 제재 조치는 한국산 반도체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을 늘릴 기회다. 지난달까지 14개월째 무역적자를 기록한 한국의 수출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는 포기하기 아까운 카드다.

그러나 한국산 반도체가 중국에서 마이크론 대체 물량으로 투입된다는 건 ‘경제안보’를 첫발부터 포기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11%에 불과한 마이크론의 현지 매출 4조원(2021년 기준)을 가져오겠다고 동맹국인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셈법이 업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은 제3국이 미중 갈등 틈에 기회를 누리는 것을 경계한다”며 “마이크론 제재로 중국 기업에 공급하는 물량이 늘었다는 인식을 주지 않도록 기업들은 수급 조절을 하며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이 ‘미국과의 의리’를 생각해 중국에 반도체 대체 물량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마이크론 빈자리를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 등 자국 기업 위주로 채워야 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YMTC가 기술 역량을 몇 단계 높여야 마이크론이 떠난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안도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 반도체는 마이크론이나 한국 반도체를 대체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이라며 “중국의 낸드플래시는 최소 2~3년, D램은 5년 정도 우리와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어 단기적으로는 아무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중국의 조치가 나온 뒤 한국 정부의 행보도 신중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의 전날 발언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시장 공백을 메우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전하자, 산업부는 23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입장문에서 산업부는 “(장 차관의 발언은) 기업들이 대응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원론적 취지의 발언으로 정부가 대응 계획을 밝힌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맹추격 속에 미국 반도체 장비를 쓸 수밖에 없다면 초격차 기술개발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업은 기술격차를 더 벌려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정부 역시 위기 상황에서 초격차 기술개발과 생산투자,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미중은 반드시 생존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이 정치적 계산으로 한국 기업을 압박하는 건 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23-05-24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