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펭귄 경제/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펭귄 경제/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2-08-06 00:00
업데이트 2012-08-06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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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이니 사회적이니 떠들어도,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하등동물한테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펭귄도 훌륭한 스승으로 모셔야 할 동물 중 하나다.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남극의 혹한 속에서 그들이 생존하는 ‘지혜’를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펭귄의 추위 극복 허들링(huddling)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허들링은 둥글게 모여 몸을 서로 밀착시키고 체온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무리의 가장 바깥에 있는 펭귄이 추워서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안쪽 펭귄이 자리를 바꿔준다. 가장 안쪽과 맨 바깥쪽의 온도 차이가 10도 정도라는데, 펭귄이 이런 효과적인 체온유지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게 그저 감탄스럽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펭귄의 허들링을 사례로 들며 경제주체들의 이기심을 꼬집었다. 그는 “경제 위기나 내수 부진에 대처하는 경제주체들의 모습도 펭귄 같아야 한다.”면서 “지나친 불안감에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투자자는 투자를 연기하고,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금융이 대출금을 회수한다면 정말 불황이 제대로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또 “(펭귄은) 나만 살자고 안쪽에 눌러앉아 있으면 바깥쪽 펭귄들이 얼어죽고, 그러면 결국 나도 죽는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며 다 함께 사는 경제를 위해 각 주체들의 배려와 협력을 호소했다.

박 장관의 뜻에 100% 동감하면서도, 경제 현실로 돌아오면 펭귄의 생존본능을 접목할 여지는 좁아 보인다. 유럽발(發) 경제위기와 중국·미국 경제의 침체는 수출로 먹고살다시피 하는 우리 경제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2분기 성적표를 받아든 기업들은 대부분 예상 밖 적자 폭 확대에 기(氣)가 푹 죽었다. 영업이익을 비교적 많이 낸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조차 향후 경제상황을 알 수 없어 위축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주택경기의 부진과 주식시장의 약세는 소비심리를 꽁꽁 묶어놓았다. 누가 누굴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정권 말(末)이다. 정치권은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재계 때리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정부의 부동산·금융 정책은 내놓는 족족 약발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펭귄의 힘을 빌려서라도 공생경제를 부르짖는 박 장관의 고군분투가 애처롭기만 하다. 요즘 같으면 인간에게 요것조것 따지는 이성일랑 빼고, 종족생존 본능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2-08-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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