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노회찬 유죄’/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회찬 유죄’/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3-02-16 00:00
업데이트 201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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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신은 진실을 알지만 기다리신다’(God sees the truth, but waits)라는 단편소설에서 선량한 상인 억시노프가 살인 누명을 쓰고 평생 감옥에 갇히는 얘기를 그렸다. 억시노프는 억울한 감방살이 26년째, 우연한 기회에 세묘니치라는 동료 죄수가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진범임을 알게 된다. 그가 분노로 잠을 못 이루던 어느 날, 세묘니치는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그러나 그는 복수를 하는 대신 세묘니치의 잘못을 눈감아 준다. 이에 감동한 세묘니치는 그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세묘니치의 자백으로 법원은 그에게 석방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많을 것이다. 증거가 명백해야 가동되는 법망(法網)으로는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가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 또한 신이 아닌 사람이 다루는 일이니까….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그제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실형 판결과 함께 의원직을 잃었다. 노 의원은 2005년 8월 옛 안기부가 불법 도청한 ‘X파일’을 근거로 녹취록과 함께 ‘삼성 떡값검사’ 7명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거명된 검사장 두 명은 소송을 걸었다. 2007년 5월, 검찰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에서 유죄와 무죄(2심)를 오락가락한 것은 그만큼 판단이 어려웠다는 뜻일 게다. 노 의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폐암 수술하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제거한 꼴”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여론은 “‘떡검’은 다 빠지고 기자와 의원 등 폭로자만 처벌해 진실을 덮었다”며 들끓고 있다. 판결을 보면서 어쩌면 이 사건의 진실은 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은 X파일 수사에서 ‘떡검’의 물증을 찾지 못했다. 돈을 줬다는 사람도, 받았다는 사람도 사실을 부인했다. 노 의원이 거명한 검사들은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로 무혐의 처리됐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했으니 제대로 했을지 의문이 들긴 한다. 반면 노 의원은 ‘떡검’ 명단을 국회의원 면책특권(헌법 제45조)의 범위를 벗어나 인터넷에 공개한 게 법망에 걸렸다. 통비법 위반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어 노 의원에겐 불리했다. 그래서 국회가 통비법의 미비점을 개선한 이른바 ‘노회찬 구명법’을 발의하고 대법원에 판결 보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의 융통성이 아쉽다. 하지만 신은 오늘도 하늘의 저울로 법관들이 놓친 증거 밖의 유·무죄는 물론,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운지를 꼼꼼하게 재고 있을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3-02-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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