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코앞인데 걱정이다. 공약에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 선거가 너무 이미지 위주로 흐르고 있다. 물론 미국도 대통령 후보의 이미지 관리에 광고를 포함해서 많은 투자를 한다. 누가 더 신뢰가 가는 인물인지 과거의 행적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후보 및 당파 간의 정책과 공약이 뚜렷하게 대비되고 이런 정책 홍보에 대한 투자가 우선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예 정책은 제쳐두고 이미지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의 의식은 두 개의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관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이다. 직관시스템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시스템1’이라고 부른다. 거의 힘들이지 않고 통제도 없는 상태에서 의식이 바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갑자기 소리가 난 곳으로 주의를 돌리거나 1+1과 같은 간단한 수식의 답이 바로 떠오르는 것은 시스템1의 작용이다. 숙고시스템인 시스템2는 복잡한 계산을 하거나 관심과 주의 집중이 필요한 상황에서 작동한다. 시끄러운 방에서 특정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거나 두 물건의 가치를 비교하는 노력이 그 역할이다.
직관시스템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옆에서 무서운 동물 소리가 들릴 때 자동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게 만든다.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결정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점도 있다. 특히 한국인의 직관시스템은 유명하다. ‘빨리빨리’ 문화도 직관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항상 빠른 결정과 신속한 행동을 선호한다. 한 번 좋아하면 화끈하게 밀어준다. 유례가 없는 광우병 사태도 ‘구멍 숭숭난 뇌’로 대변되는 공포가 주는 직관시스템의 작동 결과다. 그래도 이렇게 유별난 한국인의 직관시스템 때문에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성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선거에서 시스템1의 작용은 잘 알려져 있다. 꼭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험적으로 아무 정보 없이 여러 후보의 인물사진만을 보여주면서 유능하게 생긴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무려 70%에서 실제 당선자와 일치한다고 한다. 또 시스템1은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정이 정상적인 논리를 흩뜨려 놓는다. 정치적인 입맛에 맞는 주장은 무조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하는 사람은 원자력이 갖는 위험을 훨씬 더 과장해서 생각하고, 찬성하는 사람은 원자력의 경제적인 이득을 크게 보고 위험은 작게 본다. 시스템1이 이러한 경향을 보일 때 시스템2가 개입해서 논리적인 결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스템2는 게으른 경향이 있어 개입하기를 꺼린다. 즉, 직관대로 쉽게 결론을 내고 만다. 감정이 합리적인 의식과정을 마구 흔들어대는 꼴이다.
선거에서 직관은 ‘후광효과’로 이어진다. 후광효과는 사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의 공약은 모두 타당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후보의 공약은 다 헛된 공약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후보들도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은 큰 비용 없이 얻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돈만 들고 혜택은 없다고 주장한다. 직관시스템은 선동에도 약하다. 감정적 흥분 때문에 부당한 사실에 확신을 갖는다.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아무리 발병빈도가 낮고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몇 몇 언론의 위험보도가 대중의 공포와 공명하면, 직관에 의존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학자들이 위험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면 진실을 악의적으로 은폐하려는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꼭 한국인의 직관시스템 선호만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이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결정되지 않는 대선 후보와 난무하는 베끼기 공약도 큰 문제다. 그래도 잠시라도 직관시스템은 접어두고 시스템2를 가동해 보자. 제한된 정보로나마 후보의 능력과 비전, 급변하는 세계 속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누가 더 민생을 개선시키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세세하게 공약을 점검해 보자. 그리고 제도적으로 대선 후보는 일찌감치 확정하고, 적어도 대선 한 달 전에는 문서로 된 공약집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이상건 서울대 의대 신경과 교수
직관시스템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옆에서 무서운 동물 소리가 들릴 때 자동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게 만든다.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결정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점도 있다. 특히 한국인의 직관시스템은 유명하다. ‘빨리빨리’ 문화도 직관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항상 빠른 결정과 신속한 행동을 선호한다. 한 번 좋아하면 화끈하게 밀어준다. 유례가 없는 광우병 사태도 ‘구멍 숭숭난 뇌’로 대변되는 공포가 주는 직관시스템의 작동 결과다. 그래도 이렇게 유별난 한국인의 직관시스템 때문에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성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선거에서 시스템1의 작용은 잘 알려져 있다. 꼭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험적으로 아무 정보 없이 여러 후보의 인물사진만을 보여주면서 유능하게 생긴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무려 70%에서 실제 당선자와 일치한다고 한다. 또 시스템1은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정이 정상적인 논리를 흩뜨려 놓는다. 정치적인 입맛에 맞는 주장은 무조건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하는 사람은 원자력이 갖는 위험을 훨씬 더 과장해서 생각하고, 찬성하는 사람은 원자력의 경제적인 이득을 크게 보고 위험은 작게 본다. 시스템1이 이러한 경향을 보일 때 시스템2가 개입해서 논리적인 결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스템2는 게으른 경향이 있어 개입하기를 꺼린다. 즉, 직관대로 쉽게 결론을 내고 만다. 감정이 합리적인 의식과정을 마구 흔들어대는 꼴이다.
선거에서 직관은 ‘후광효과’로 이어진다. 후광효과는 사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의 공약은 모두 타당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후보의 공약은 다 헛된 공약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후보들도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은 큰 비용 없이 얻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돈만 들고 혜택은 없다고 주장한다. 직관시스템은 선동에도 약하다. 감정적 흥분 때문에 부당한 사실에 확신을 갖는다.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아무리 발병빈도가 낮고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몇 몇 언론의 위험보도가 대중의 공포와 공명하면, 직관에 의존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학자들이 위험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면 진실을 악의적으로 은폐하려는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꼭 한국인의 직관시스템 선호만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이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결정되지 않는 대선 후보와 난무하는 베끼기 공약도 큰 문제다. 그래도 잠시라도 직관시스템은 접어두고 시스템2를 가동해 보자. 제한된 정보로나마 후보의 능력과 비전, 급변하는 세계 속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누가 더 민생을 개선시키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세세하게 공약을 점검해 보자. 그리고 제도적으로 대선 후보는 일찌감치 확정하고, 적어도 대선 한 달 전에는 문서로 된 공약집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2012-12-15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