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 눈높이 태극기/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열린세상] 국민 눈높이 태극기/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입력 2013-07-31 00:00
업데이트 2013-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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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나라의 상징이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국경일 국기게양 비율은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하락했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근년에는 전국 국기게양률이 8%에서 3%로 급감했다니 예사로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 초·중·고 교실 앞 벽면에 걸려 있던 태극기도 대부분 사라지고 있고, 국경일이면 신문들이 태극기 없는 아파트 풍경을 취재하며 국기의 실종을 개탄한다. 국민의 가슴에서 멀어진 태극기,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 수 있을까?

해마다 7월로 접어들면 정부 및 여러 단체들이 국기게양 운동에 나선다. 연중 공식 국기게양일의 86%가 하반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에서는 한국자유총연맹의 ‘나라사랑 공감 한마당, 전 국민 태극기 게양 확산운동’이 시작되었고, 안전행정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는 ‘국기게양일 지정’ 조례를 추진하고, 국경일은 물론 도에서 의결한 날도 국기를 달도록 정하며, 복지보육시설과 취약계층에게 국기게양대를 설치해 주고 태극기를 지원할 계획이란다. 이 부산한 움직임들은 국민의 태극기에 대한 무관심이 갈 데까지 갔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캠페인은 태극기 보급과 게양 확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런 노력이 진정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미국은 성조기를 채택한 1777년 6월 14일을 국기의 날(Flag Day)로 지정하여 매년 기념하고 있으며, 1966년부터는 대통령이 국기 주간(Flag Week)을 공표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국기와 관련된 문화예술 공연, 문학작품 공모가 있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손 국기(手旗), 국기 스카프, 국기 스티커 등을 가지고 놀거나 국기를 얼굴에 그리는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또 노스캐롤라이나의 국기박물관에서도 국기 관련 전시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그러한 풍경들은 국기에 대해 삼엄한 마음을 갖는 우리의 정서와는 크게 대비된다. 어릴 때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게양 의무로 느낀 압박감이 이제는 국기를 거저 주고 달기를 호소해도 잘 통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국기법 11조는 국기 또는 국기문양의 활용 및 제한 조항에서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극기와 그 문양을 각종 물품과 의식(儀式)에 활용할 수 있다고 열어 놓았다. 교실 벽면에 높이 걸린 액자 태극기 대신, 깃대형으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둔다면 그들은 태극기와 더 긴밀히 눈 맞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가 국기를 여권을 비롯한 각종 상품에 세련되게 적용하듯, 경쟁력을 지닌 우리 제품들에 태극기 적용을 연구하여 관공서와 기업에 그 용례를 제시하자. Made in Korea로 원산지 표시를 할 때 태극기가 늘 동반된다면 한국이 태극의 나라로 자리매김되고, 한국인이 궁극의 조화를 추구하는 국민으로 각인될 것이다. 게양대 위의 태극기가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속에서 표출되도록 디자인한다면, 국민은 항상 태극기를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국기는 한 국가의 종합상징체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항목이다. 태극기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찾아내고, 공간을 설계하자. 국기의 날을 기념하는 세계 40여개국처럼 우리나라도 국기의 날을 제정하자. 1883년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도상과 4괘로 이루어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한 3월 6일을 국기의 날로 지정하든가,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기통일양식’을 제정한 6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공립박물관, 사설박물관, 개인 소장자 등으로 흩어져 있는 태극기 관련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태극기박물관을 설립하자. 그리고 우주론을 담은 세계 유일무이의 국기를 통해 국가 브랜딩에 나서자.

2002월드컵 경기 때 우리는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아버지 같은 태극기와 처음으로 진한 스킨십을 경험했다. 이제 저 높은 곳의 국기는 눈높이 국기로, 존엄한 국기는 사랑스러운 국기로 국민들의 가슴에 다가가야 한다. 태극기 보급과 게양률 높이기도 중요하지만, 태극기가 어머니같이 편하고 친구같이 함께 있어 마냥 좋을 때, 태극기는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2013-07-3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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