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즈오카 사찰에 각인된 한일 문화교류의 흔적>

<일본 시즈오카 사찰에 각인된 한일 문화교류의 흔적>

입력 2014-12-05 00:00
수정 2014-12-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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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유물의 ‘보고’ 세이켄지·호타이지 탐방기

기자는 4일 주일한국대사관의 주선으로 한국과 일본 전·현직 언론인 30여 명과 함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의 족적이 남아 있는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소재 세이켄지(淸見寺)와 호타이지(寶泰寺) 등을 찾았다.

최근 한국 민간단체와 일본 지방자치단체 간에 조선통신사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동등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에 발맞춰 현장을 둘러보는 의미가 있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 사이에 12차례 걸쳐 조선 임금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을 말한다. 매번 400∼500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 행렬은 조선 임금의 국서를 에도(江戶)막부의 쇼군(將軍)에게 전달하고, 쇼군의 답서를 받아 돌아갔다. 한성-부산-시모노세키(下關)-오사카(大阪)-교토(京都)-나고야(名古屋)- 에도(도쿄) 등으로 이어지는 왕복 4천300km의 대장정이었다.

취재진의 첫 행선지는 막부가 조선통신사를 접대하는 장소로 활용한 세이켄지였다. 사찰 측이 재현해 보여준 ‘1식15찬’의 조선통신사 식사는 통신사가 한번 다녀가면 막부의 재정이 휘청할 정도였다는 ‘설’에 현실감을 덧입혔다. 도미, 전복, 민물장어 등 고급 식자재들이 가득한 성찬이었다.

임진왜란(1592∼1598)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던 시절, 일본인들이 차려준 ‘산해진미’ 밥상을 앞에 둔 조선 외교사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해방 이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위해 일본을 오간 한국 외교관들의 심정도 그처럼 복잡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세이켄지를 둘러보며 두 나라 사람들의 문화 교류만큼은 역사의 원한을 넘어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이켄지에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던 흔적이 풍성했고, 그것을 정성 들여 보존하는 사찰 측의 성의가 느껴졌다.

사찰 경내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쓴 글귀를 새긴 현판, 자작 시(詩), 사찰 관계자와 나눈 필담, 사찰의 부탁으로 그린 수묵화 등이 잘 보존돼 있었다. 보존만 돼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당과 보물관 등 방문객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전시돼 있었다.

입구에 걸린 편액에 새겨진 ‘동해명구(東海名區)’는 1711년 제8차 조선통신사의 통역관이었던 현덕윤(1676∼1737)이 쓴 것이고, 종루(鐘樓)에 걸린 편액 ‘경요세계(瓊瑤世界)’는 1643년 조선통신사의 일원이었던 천문학자 박안기(1608∼?)의 글씨다.

아름다운 옥(玉)을 의미하는 ‘경’과 ‘요’는 조선과 일본 두 나라를 비유하는 것으로, ‘양국이 만난 장소’라는 의미를 담은 글귀로 풀이된다고 전 시즈오카시 문화재과 직원 와타나베 야스히로(渡邊康弘)씨가 전했다.

56년 세월을 사이에 둔 채 조선인 부자(父子)가 쓴 시도 전시돼 있었다. 1655년의 제6차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세이켄지에 온 선친 남용익(1628∼1692)이 남긴 시를 1711년 절을 찾은 아들 남성중(제8차 조선통신사의 일원)이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기리는 시를 지어 올렸다고 한다.

아울러 세이켄지의 요청에 따라 1764년 조선통신사 일행이었던 김유성(1725∼?)이 그려줬다는 수묵화에는 금강산의 절경과 낙산사의 고고한 자태가 담겨 있었다.

취재진은 조선통신사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일본 측이 산 중턱에 낸 길인 삿타토우게(さった峠)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조선통신사 일행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렀다는 호타이지를 방문했다.

이 절의 정원을 본 조선통신사 일행 신유한(1681∼?)은 “그 아름다움은 나라에서 제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사찰 측은 귀한 손님에게 오랜 세월 아껴둔 ‘명주(名酒)’를 내 놓듯, 취재진에 조선통신사 일행과 사찰 측이 주고받은 글들을 꺼내 보여줬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종이는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돼 있었다.

무엇보다 호타이지는 ‘통신사 평화 상야등(常夜燈)’이라는 이름의 석등을 통해 조선통신사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타이지가 조선통신사 400주년인 지난 2007년 12월 설치한 이 등은 임진왜란으로 깨진 양국관계를 회복하는데 기여한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세계평화에 대한 기원(祈願)으로 연결하자는 취지를 담았다고 취재진과 동행한 김양기 전 시즈오카현립대 교수가 전했다. 경기도 여주의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282호)을 모델로 했고, 석재는 경북 영주산 화강암을 썼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병기된 상야등 안내판에는 “앞으로 일한관계와 세계평화에 일조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평택대 교수를 지낸 오바타 미치히로(小幡倫裕)씨는 “조선통신사 200년의 역사는 양국이 외교적으로 서로 위신을 세우려 한 부분이 있는 동시에 문화교류의 측면이 있으며, 그에 대해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한다”며 “양국관계는 확실히 어려운 상태이지만 조선통신사를 통해 서로 함께 알아갈 길이 열린다면 그것을 양국관계 개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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