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상’ 시부문에 김은순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선정

‘4·3문학상’ 시부문에 김은순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선정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4-04-12 08:26
업데이트 2024-04-1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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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부문 당선작에는 하상복의 ‘칼라스의 전사…’
제12회 4·3문학상 소설부문은 당선작 내지 못해

한때 항아리는 걸어 다니는 종족이었다/무릎이 녹고 발목이 녹고 급기야/발자국이 녹아 대숲 아래 살게 되었다/항아리엔 말라붙은 말보다/말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대숲이 컹컹 짖는 말들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한날한시 엉켜버린 죽음을 바라봤다/죽음은 죽어서도 만나지 못했다/아직 거두지 못한 숨이 있다고/성글게 덮은 흙을 들썩거렸다/돌담 밑의 수선화의 피가 더 솟아도/수평선이 조금 더 눈금을 올려도/사월은 항아리 같아서/죽은 꽃나무 같아서/한때 돌이었고 흙이었던 노래로/돌아가고 싶었다/축축하고 서늘한 골짜기로 돌아가고 싶었다/저 꽃피는 자두나무 그늘이 시들기 전에/대숲은 돌이 된 사람과 새가 된 사람과/바람이 된 사람을 켜는 마고할미의 악기/혹은 죽음으로 가려운데 말을 긁어도/피 흘리지 않는 항아리의 목소리였다/돌아올 길도 없는데 사월은/예감도 예고도 없이 노래하는 죽음의 언덕을 밟고 온다/거기 온몸에 촛불을 켜는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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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4·3문학상)에 시 부문 당선작에 김은순(왼쪽)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가 선정됐다. 논픽션 부문 당선작에 하상복(오른쪽)의 ‘칼라스의 전사 - 관용의 사상가, 볼테르’가 선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4·3문학상)에 시 부문 당선작에 김은순(왼쪽)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가 선정됐다. 논픽션 부문 당선작에 하상복(오른쪽)의 ‘칼라스의 전사 - 관용의 사상가, 볼테르’가 선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4·3문학상)에 시 부문 당선작에 김은순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가 선정됐다. 논픽션 부문 당선작에 하상복의 ‘칼라스의 전사 - 관용의 사상가, 볼테르’가 선정됐으며 장편소설 부문은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12일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임철우)에 따르면 지난 1일 본심사를 통해 시 부문 김은순의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 논픽션 부문 하상복의 ‘칼라스의 전사-관용의 사상가, 볼테르’를 제12회 4·3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4·3문학상을 주관하고 있는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김종민)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전국 공모를 진행한 결과 국내외에서 303명이 2002편(시 1880편, 장편소설 115편, 논픽션 7편)이 접수됐다.

시 부문 당선작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는 작가의 ‘마고할미의 눈물’ 연작시의 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단은 당선작에 대해 “ ‘한날한시 엉켜버린 죽음’에 대한 애가이자, ‘죽음의 언덕을 밟고’오는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을 잘 드러내고 있다”면서 “현재성과 더불어 절제되고 내밀한 언어가 진정성을 느끼게 하며, 향토적 색채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의미망을 넓혀가는 시의 전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상상력으로 4·3의 아픔을 환기한 ‘사월은 예감도 예고도 없이’에는 신화와 상징도 함께 작동한다”면서 “독자에 따라서는 여기에서 평화와 인권으로 가는 길목을 찾을 수도 있다”고 당선작으로 결정한 이유를 전했다.

논픽션 당선작 ‘칼라스의 전사-관용의 사상가, 볼테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칼라스 사건과 관련한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비판적 실천을 주목한 평전적 성격의 논픽션이다.

심사위원단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대화식 구성, 계몽사상의 현실적 개입을 보이는 볼테르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유려한 문장력 등 이 작품은 세계 지성사에서 알려진 칼라스 사건의 전모를 치밀한 학술적 논거를 통해 재구성한 바,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서 논픽션의 지평을 심화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며 “4·3평화문학상이 전 지구적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심화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은 “후보작들 중 ‘그날이 오면’, ‘싸락눈’, ‘쥬시’, ‘끝남의 세계’ 작품들을 놓고 고심 끝에 올해 제주4·3평화문학상 소설 부문의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모든 인생을 걸고 제주4·3이라는 미증유의 역사적 상처를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하고 일구어 온 제주문학의 전통에 대한 경외심이자 그동안 여러 문제작을 낳은 제주4·3평화문학상에 대한 각별한 존중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한편 4·3문학상은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2012년 3월에 제정했다. 2015년부터 제주4·3평화재단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으며 상금은 9000만원(장편소설 5000만원, 시 2000만원, 논픽션 2000만원)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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