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허무와 기묘한 희망… 전지전능함에 맞서는 인류

지독한 허무와 기묘한 희망… 전지전능함에 맞서는 인류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4-04-02 03:17
업데이트 2024-04-0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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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톱10’ 오른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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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노년의 예원제(로잘린드 차오)가 드라마 속 중국 전파천문대 연구소 앞에 서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노년의 예원제(로잘린드 차오)가 드라마 속 중국 전파천문대 연구소 앞에 서 있다.
넷플릭스 제공
지구를 침공하겠다는 외계문명과 그들에 응전하는 인류.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형을 그대로 따른다. 살짝 진부한가 싶다가도 메시지에 밀착하면 상당히 무게감 있는 문제의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인간을 멸하려고 할 때 우리는 허무와 희망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만든 것으로도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가 지난달 21일 공개된 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 세계 93개 국가에서 ‘톱10’에 올랐고 독일 등 15개국에선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3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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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양성자 컴퓨터 ‘지자’(세아 시모오카)가 인류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양성자 컴퓨터 ‘지자’(세아 시모오카)가 인류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SF계의 노벨상’ 받은 탄탄한 원작… 입소문 속 한국서도 3위

탄탄한 원작의 힘이다. 엔지니어 출신 작가 류츠신(61)이 쓴 동명의 소설은 은연중에 장르소설의 문학성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중국 문단의 시각을 뒤집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저명한 SF 소설가인 켄 리우(48)의 번역으로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도 받았다. 책은 총 3부로 이번 넷플릭스 시리즈는 1부에 해당한다. 시즌2 제작도 이미 확정됐다고 한다. 앞서 중국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됐다. 원작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갔던 중국판과 달리 넷플릭스는 배경과 등장인물의 세부 설정을 대폭 각색했다. 이야기의 핵심인 중국인 과학자 예원제(청년 자인 쳉, 노년 로잘린드 차오)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 개의 태양이 뜨는 자신들의 항성계에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삼체문명’이 지구를 정복하러 온다.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0년. 인류는 그동안 그들을 막아 낼 방법을 찾고자 분투한다. 제목은 ‘삼체문제’에서 유래했다.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체 세 개가 서로의 인력 아래에 놓여 있다면 어떤 궤도로 움직일까.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1854~1912)는 1887년 이 문제의 일반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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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영국 정부 비밀 요원 클래런스 시(베네딕트 웡)가 벌레가 가득한 늪에서 인류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영국 정부 비밀 요원 클래런스 시(베네딕트 웡)가 벌레가 가득한 늪에서 인류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AI 스파이 ‘지자’ 등 삼체문명 앞에서 만난 뿌리 깊은 허무

가장 소름 끼치는 존재는 양성자 컴퓨터 ‘지자’다. 지구를 염탐하고 인간의 과학 발전을 방해하고자 삼체문명이 파견한 ‘인공지능 스파이’다. 입자가속기에 침투해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지구의 모든 이야기를 엿듣는다. 무엇이든 알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인간이 뭘 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도전이 의미가 있는가. 삼체문제와 삼체문명은 인간 지성의 한계와 그것을 뛰어넘는 존재 앞에서의 뿌리 깊은 허무를 상징한다.

삼체문명과 인류의 대결은 단순히 지구라는 공간을 지키는 것을 넘어선다. 인간 근원의 허무를 극복하는 일이라서다. 삼체문명은 인간들에게 “너희는 벌레다”(You are bugs)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과 대적하고자 이것저것 시도했던 과학자들은 지독한 절망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정부 비밀 요원 클래런스 시(베네딕트 웡)는 실의에 빠진 과학자들을 교외의 늪으로 데려간다. 거기에는 수많은 벌레가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단 한 번이라도 지구상에서 벌레를 멸종시킨 적 있느냐고. 수없이 살충제를 뿌리고 그들을 박멸코자 했지만 벌레들은 끝끝내 살아남아 여전히 저렇게 번성하고 있다고. 벌레로 비하된 인간이 도리어 벌레를 통해 희망을 회복하는 기묘한 역설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오경진 기자
2024-04-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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