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입력 2010-03-20 00:00
업데이트 2010-03-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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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사 산책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실명 비판을 들고 나와 논쟁의 한복판에 우뚝 섰던 이가 있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정치, 경제, 교육,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은 그의 비판에는 성역이 따로 없었다. 제도권 안에 머물던 학술적 의제들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들과 접점을 만들어 나간 셈이다.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했고, 그로 인해 ‘지식 대중’의 씨가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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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치부 또는 관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를 피부에 와 닿는 언어로 의제화하는 비판적 사유나, 어마어마한 자료 수집과 폭넓은 독서, 그리고 이를 하나로 꿰뚫어 내는 통찰력 등이 어우러져 그는 ‘토론과 논쟁의 지존’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쉼 없이 현실 정치 등에 대한 발언을 거듭하던 그는 2002년 이후 홀연히 논쟁의 테이블을 떠난다. 그러나 대중적 글쓰기 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 산책’(전 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등 더욱 정력적인 저술 활동을 계속해 왔다.

강 교수가 다시 한 번 대역사(大役事)에 나섰다. 이번에는 미국의 역사를 예의 비판적 사유와 통찰력을 앞세워 관통시켰다.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펴냄)은 일단 5권까지 나왔고, 앞으로 모두 15권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미국사 산책’은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또는 정복’에서 영국에 대항해 벌인 독립전쟁까지를 다룬 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부터 시작해 미국의 역사를 통사(通史)적으로 풀어 나간다. 그리고 2~5권에서는 미국의 건국, 노예제, 남북전쟁, 서부개척, 자본 권력의 대두, 1차 세계대전, 할리우드·미키마우스로 상징되는 문화권력의 탄생 등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번 미국사편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전체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統攝)적 고찰이다. 또 잰걸음으로 시간적 월경(越境)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초기 미국사를 거론하며 쉼 없이 당대 유럽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는 식으로 풀어 나간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뿌리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유럽 이주민들에 있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유럽의 상황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한 그가 자신의 미국사 시리즈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또는 ‘미국사 비빔밥 요리’라고 자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가 힘줘 얘기하는 부분이면서 미국사 시리즈를 쓰고자 했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반미(反美)도, 친미(親美)도 아닌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정립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혜롭게 사는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미국의 장점과 단점을 적절히 섞어서 짚어주는 안전 노선을 추구하게 마련이지만 이들 역시 미국에 대한 근본 입장은 반미 또는 친미, 한 편에 가 닿는다.

반미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친미로부터도 버림받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강준만의 뚝심’은 다시 한 번 우직하게 걸음을 내딛는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등 미국 내 대표적인 진보학자들의 시각과 견해는 물론 새뮤얼 헌팅턴, 대니얼 부어스틴 등 오른쪽에 있는 또 다른 이들 역시 치우침 없이 각자의 논거를 갖고 등장한다.

일상에 대한 미시사, 잘못 알려진 상식 등을 짚어 가며 읽다 보면 아주 재미있다. 다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등 전방위적으로 샅샅이 훑고 있으니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예컨대 ‘종교가 미국 사회 정립에 미친 영향’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움켜쥐어야 한다. 1~5권 각 1만 4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3-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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