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녹취록

[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녹취록

입력 2012-05-13 00:00
업데이트 2012-05-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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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 흰 눈 위에 점점이 뿌려진 핏빛. 10여년 전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그만큼 무섭고 아렸다.

잡지 ‘사람과 산’을 창간하기 전 이미 산 밑의 5000명을 정기구독자로 확보했던 산사나이. 힘들게 만든 잡지를 2년 이끌고 미련 없이 넘긴 뒤 산으로, 전업작가로 떠난 그이.

여러 기행문과 대하소설 ‘백두대간’을 2권까지 내놓은 박인식(61) 작가가 200자 원고지 5000장 분량의 기행소설 ‘첫사랑뿐’(3권 바움)을 내놓은 것이 지난 연말. 넉달여 뒤늦게 책갈피를 100여쪽 넘길 즈음, 푹 빠져들었고 그를 만나고픈 용기가 생겼다. 인사동 술독을 마르게 했으며 황석영 작가 등과 더불어 ‘4대 구라’로 꼽히는 그를 봄바람 부는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구 계동의 홍영식 생가인 한옥을 개조한 와인바 안마당에서 만났다.

지난해 환갑을 넘겼는데도 바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몸매는 탄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젊은이 못잖은 각 잡힌 어깨, 그가 좋아하는 와인을 빚게 만든 원료마냥 볼록 튀어나온 알통까지, 영락없는 산사나이였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자동차(심지어 운전면허), 신용카드, 텔레비전이 없어 오무자(五無者)라 불리는 그는 산과 문학, 음악, 미술, 희곡 및 드라마(1997년 MBC 드라마 ‘산’ 집필) 등으로 넘나드는 자유로 그 모든 것을 보상받았다.

(약 90분의 인터뷰 도중 이래저래 녹음되지 않은 대목들은 기자의 기억으로 되살렸다. 실제 내용과 약간 거리 있는 내용이 포함됐을 수 있음을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인터뷰 약속 잡을 시점에 1권의 100쪽 정도 읽고 있었는데 주말을 이용, 산에도 못 가고 읽어 지금 3권의 3분의 2까지 읽었다. 원고 뭉치도 상당할텐데 어디 있나.

-그러고보니 아직 출판사에서 갖고 있네요.

→원고를 보관하는 것도 그렇고 수정하는 것도 컴퓨터로 하면 훨씬 쉬울텐데, 원고지로만 작업을 하는 이유는.

-글을 쓸 때의 집중력,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때 느낌, 힘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오랜 세월 그렇게 써와 익숙해졌다. 컴퓨터 자판에 입력하면 그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바탕은 (소설에 나온) 연도 그대론데요. (19)93년에 그쯤에 실크로드 통해가지고 카슈가르를 경유해 곤륜산맥 막장으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소증에 걸려 가지고 어떤 환각상태에 빠져가지고 신이 내리는 경험을 했어요. 하루 저녁에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믿어지지 않는 실제로 쓰고 소설에 있는 그대로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19년 동안 그 기억에서 헤어나질 못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내한테 일어났는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우리 무속으로도 접근해보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이 십몇년 지난 다음에 어느날 문득 내 전생(前生)이, 문학적 상상을 해봤습니다. 내 전생의 삶이 어딘가 거기 있었고 나를 부르려고 했던 간절한 어떤 바람 같은 게 사랑이라도 좋고, 나를 꼭 다시 찾아오게끔 만들 염원 같은 것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가정 아래 그것을 소설로 쓰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게 4~5년 정도 생각을 묵혀서 승화시켜서 스토리를 내 나름대로 구성해 쓰겠다고 마음 먹고 구성이 다 돼있었으니까. 2년 전에 파리로 가서 매일 조금 마음을 가다듬고, 난 한 번 펜을 잡으면 끝날 때까지 잘 안 놓는 스타일입니다. 딱 한 달동안 하루에 200자 원고지 100장씩 쓰고 먹고 자고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101쪽부터 200쪽까지 딱 쓰고 그게 몇시에 끝났든지 딱 쓰면 먹고 자고 한달간 30일 동안 3000매를 썼어요.

그게 1권 반 정도 분량이었어요. 그리고 그 뒤에 부처의 길을 따라 인도에 100일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그래서 그걸 가느라고 그 다음에 책을 내느라 1년 정도 그 작업을 못하다가 그걸 끝내고 다시 또 한번 파리로 가서 한달 동안 써가지고, 사실은 책에는 5000장이라고 해놓았는데 사실 6000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에 탈고해서 책이 나오게 된 겁니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게 보관하기도 쉽고 수정하기도 쉬울텐데, 퇴고하기가 굉장히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는 퇴고를 거의 안한 거죠. 저는 장편소설 써본 경험이 여러 번 있는데 지난번에 백두대간이라고 장편 대하소설 10권을 쓰기로 마음 먹고 지금까지 두 권 밖에 못 펴냈는데.그걸 쓰면서 나는 거의 자료 없이 머리도 좋지 않은데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대하소설이라는 게 완전히 문학의 최고봉인데 좋지 않은 돌대가리 머리에서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어요. 그리고 컴퓨터도 지금 지적하신대로 장편소설은 퇴고가 굉장히 중요한데, 구성이 완벽하게 돼야 하는데 이게 쓰다 보니까 게을러가지고 그걸 하기가 싫어져요. 그 순서를 이렇게 바꾸면 좋을텐데 문장도 표현도 좋아질 수 있는데도 넘어가버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딴 거는 못하더라도 컴퓨터로 (다른 사람이라도) 입력을 하고 인터넷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해요.

→그렇게 긴 작품이어서 그런지 책 나온 지 한참 됐는데도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서운한 느낌이 있을 것 같은데요.

-뭐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기회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거 다 내려놓았어요. 내려놓고보니 이제 책 써서 밥 벌어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더 없어졌어요.

지난번 여기로 어떤 할머니 두 분이 찾아오셨어요. 한 분은 여든이 훌쩍 넘은 분이고, 또 한 분은 칠순을 넘긴 할머니로 보였는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했더니 그 중의 한 분이 오늘 박 작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겠다고 오셨다는 거예요. 제가 2010년에 낸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보고 너무너무 좋아서 그런 얘기를 몇 달 동안 하고 다니셨대요. 그런 데 마침 그날 이 근처에서 다른 분을 뵜는데 그 분이 마침 제 후배라 그럼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해서 요 가게 앞까지 바래다주고 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연세의 할머니들치고는 말씀하시는 본새라든가가 너무 멋지고 그러신 거예요. 해서 뭐하셨던 분이예요, 라고 여쭈니 머뭇거리시다 옛날 문예지 편집장을 지내셨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여기저기 알아보니 고 김수영 시인의 누이이신 거예요. 제가 아주 젊었을 적에 한 번 뵌 적이 있는데도 세월이 많이 흘러 몰라뵜던 거지요.

그런데 그 할머니 말씀이 박 작가처럼 글 쓰는 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로선 그런 팬들이 계시면 되는 거지요.

출판사에서도 어쨌든 제 책을 꼭 사보는 이들이 1000명은 있다는 거예요. 그럼 된거지요. 뭐.

→구상하고 있는 작품은 혹시 있으신지요.

-내가 어차피 산을 정말 좋아했고 산에 미쳤으니 그 다음에 우리나라를 정리할 적에 우리나라는 정말로 산악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한국사람의 산과 연관된 진정한 문학이 없다고 저는 보여지거든요. 그래서 나한테 남겨진, 나보고 정리하라고 남겨놓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백두대간 작업을 끝내고 한민족이 산과 연을 맺을 수밖에 없는 영성이, 그래서 산의 영성에 대해서 필생의 역작을 쓰고 싶습니다. 그거만 쓰면 더 이상 글 쓰고 싶다는 어떤 욕심이 다 사라질 만큼 역작을 쓰고 싶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산들인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일례로 저한테 참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던 중국의 가오싱젠(高行健)이 쓴 ‘영혼의 산’ 같은 경우, 그쪽에 관심 많아서 봤는데 산의 진정한 본질과 산의 영성에 대해 한참 못 미치는, 그건 그 사람의 문학적 역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태생이, 중국의 한족들은 산과 진정으로 영혼을 교환, 나눌 수 없는 그런 민족적으로 그런 신내림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여지고요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소설의 틀은 남미의 마르케스를 필두로 한 환상 리얼리즘 소설을, 우리나라에는 산과 관련된 무속에도 충분히 그를 능가하는 많은 설화들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나만이 쓸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산에 관한 계획은 없으신가요.

-농담으로 내가 정말 산을 사랑하고 산행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은 돌아오지 못할 산을 마지막으로 한 번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근데 그 나이를 조금 더 연장하고 조금 더 제대로 그 사이에 산행하는 것을 다 풀어놓을 때까지 건강히 살려면 어떤 체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 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중에 하나는 저는 늘 걷습니다.

파리에 있을 때도 일체 메트로, 전철도 안 타고 약속이 있어 두 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라도 두 시간 먼저 나서 걸어서 갑니다. 파리에서는 일체의 바퀴 달린 것을 타지 않고 늘 걷습니다. 걷기가 힘든 동네라도 걸어가면서 책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시간이 있으면 야외카페에 앉아 메모로 정리할 수 있고 특별히 작업하는 때가 아니면 하루에 대여섯 시간은 걷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파리에서 내 나름대로 개발해놓은 산책 코스들이 많이 있는데 전 황석영 선배가 파리에서 2년간 살은 적이 있어요. 근데 마침 내가 그 집을 마련하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매일 만나 와인 한 잔 하면서 개발해놓은 코스로 산책을 함께 하면서 많은 교분을 쌓았죠. 그런 정도로 걸었죠 그렇게 많이 걷는 이유는 연장선에서 재작년 부처의 길을 1500㎞를, 부처가 태어난 데서부터 처음 깨달은 데, 그 다음에 법문하는 데, 마지막으로 열반하신 데를 그렇게 해서 거기도 찻길이 아니라 옛날 부처가 실제로 걸었던 그 길로 옛날 길로만 사람들이 먹고 자고 뭐 씻고 배설하고 하는 기본적, 최소한의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 그런 데를 100일간 걷고 났더니 그때 들어올 적에, 인도 이민국에서 네팔로 넘어올 적에 몇번을 보더니, 거기 직원이 왜 남의 여권 갖고 왔느냐고 할 정도로 완전히 그때 제가 몸이 많이 빠졌어요. 14㎏가 빠졌다고.

어쨌든 그렇게 많이 걷는 이유가 마지막 산행을 할 적에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체력을 유지해야겠다는 거때문에. 그때는 정말 힘든 등반을 내 나이에 상관없이 한번 해보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혹시 그 산을 정해놓으신 건 아닌지요.

-정해놓지 않았는데 히말라야의 7, 8000m 정도 남들이 등반하지 않았던 그런 처녀봉을.

→(안나푸르나 가까이의) 마차푸차레?

-마차푸차레도 좋지요.

→그건 아닌가요.

-네 그건 아니고요.

→그럼 (에베레스트 못 미처) 아마다블람?

-아니 그건 너무 낮고. 좀 더 큰.

→그런 계획을 사모님한테 말씀하세요.

-아니오. 집사람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결혼 이후 모든 일체를 상의해본 적이 없어요.정말 마촌데, 나쁜 마촌데

→부럽습니다.

-자유인이니까요. 이거 하나는 말씀 드리고 싶은데. 문학으로 밥 벌어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버렸습니다.

→대략 어느 정도 시기에 그런 결심을 하셨나요.

-꽤 오래 전부터 조금 더 유명해지고 조금 더 잘 팔리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버리고 더욱 더 마음을 확실하게 다잡은 것은 지난 번에 부처길을 걸었을 때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겠고 남은 생에 그때가 환갑이었거든요. 지금 내가 제대로 걸어왔는가, 앞으로 또 남은 삶을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어디이고 지금까지 걸어온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걸어가서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 확실하게 한 번 더 내 자신을 찾았고 또 내 자신을 본 거죠.그 여행이 정말 소중한 체험이 됐습니다.

근데 세상 사는 게 뭐 그렇게 만만치는 않아가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일들은 틈나는대로 능력이 있으면 도와주고 뭐 이렇게 하고 있는 상태예요.

→파리로 옮기신 특별한 계기같은 거는요.

-그거는 저는 오래 전부터 방랑 생활을 했잖습니까. 그래서 어느 날 집사람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근데 집사람이 화가예요. 제가 다녀본 중에 화가가 살기에는 파리가 제일 좋은 거 같더라. 좋다고 그래요. 그 말이 떨어지고 6개월 만에 모든 거를 정리하고 파리로 가버렸죠.

→항상 준비를 해오셨던 거지요.

-아니오. 집사람도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릴 때고 하니까. 저 사람이 나이차가 많이 나거든요. 열한살 차이니까. 그때만 해도 내가 마흔다섯이고 저 사람이 서른넷 정도 밖에 안 되니까. 그냥 간 거지요. 아들은 파리에서 계속 살다가 군대 때문에 들어와서 제대해서 여기 있고 딸네는 지금도 파리에 있고요.

→그렇게 긴 작품에서 뭘 얘기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 첫 사랑의 신이나 의식이나 감정이나 요런 것을 삭여내지 않고는 또는 거기에 대항하는 유일한 힘은 우리는 여기 첫 사랑에서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다시 한번 얘기해본다면 개인이나 집단이나 이념이나 모순과 모순이 부닥쳐서 갈등이 생기고 정반합을 걷다보면 그런 복잡한 과정의 연속인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철학적이거나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첫째 에너지원은 첫사랑의 숭고한 감정이라고 보거든요. 의미있게 뭐 감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너무 낙관적이라고 지적해도 뭐라고 변명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어떤 정서, 감정 속에서 정말 이 우주세계를 우주를 정말로 재편해서 정말로 재미있게 활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에너지원은 그것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그걸 전하고 싶어서 이 긴 얘기를 쓴 건데 어느 정도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됐는지는 제가 판단할 몫은 아닌 것 같습니다.

→써놓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해보셨을 거 같은데 조금 더 집약해서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후회 같은 건 없으셨나요.

-네 그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약된 힘도 좋겠지만 길면 긴 소설 나름대로 기승과 파고들어가는 집중력이 나름대로 있는 거거든요. 컴퓨터로 얘기하자면 용량의 차이일텐데. 용량이 큰 걸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왜냐하면 큰 얘기를 담았고 개인과 개인간의 첫사랑 감정을 첫 에너지원으로 삼았지만은 거기에는 민족과 민족간의, 중국과 중국에 살 수밖에 없었던 소수민족간의 문제,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로 분단돼서 신라가 통일하는 과정 속에서의 그런 역학관계도 담아내는 크고 깊게 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쓰면서도 조금 더 길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요즘 출판시장에 뭐, 황석영 선배 같은 분도 너 제발 길게 쓰지 마라, 요즘 출판 독자 취향이 200자 원고지 900장 정도 넘어가면 잘 안 읽는다, 는 거예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타협한 게 이 정돕니다. 백년동안의 고독도 정말 긴 내용입니다. 요즘 누가 그런 얘기 쓰려고 합니까. 남이 안 쓰기 때문에 나는 쓰고 싶다.

→아까 말씀하신 그 책, 산이 주인공인 그 책도 굉장히 긴, 호흡이 긴.

-네 최소한 원고지 2500매 분량은 될 거 같아요. 써봐야겠지만 그 정도는 돼야 내 할 얘기는 다 할 수 있겠다.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정도의 분량. 그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너무 짧다. 10권 정도로 썼어도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는 얘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마르케스가 신문기자 출신이고 노벨상 탔을 때도 저널리스트 역할을 계속 했잖아요. 아마 최근까지도 있었을 거에요. 그가 얘기한 중에 인상적인 얘기가, 자기가 생각하는 소설가는 모든 것이 신문기사화해도 될 정도의 내용을, 그걸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근데 그건 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소설들하고는 정말 차원이 다른 얘기들인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라든가, 많이 읽히는 작품 어느 하나도 스토리텔링은 없는 거거든요. 스토리 자체를 신문기사화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란 말이에요. 그건 시대적 감각과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난 소설의 기본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기본은 스토리텔링이고 스토리텔링에서의 소설적인 특징을 가장 잘 얘기한 게 마르케스의 그런 경구인데 거기 걸맞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신문기사와 같은 소설은 어떤 내용인지요. 현실이 그만큼 오롯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 얘기이기도 하고, 기자들 세계에서 얘기하잖아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 식의 상식을 ,일반적으로 기사가 되는 일은 보통사람들이 겪는 일상사는 신문에 안 나잖아요. 그래서 그걸 벗어난,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어떻게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게 소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거지, 마르케스는 그런 얘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역으로 인간의 길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을 역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거지요.

물론 이제 문장이나 모든 것이 기사하고는 엄격히 차별되어야겠죠. 신문기사하고 문학작품으로서의 소설과는. 그건 언어의 문제인 것이지. 그 소설의 주제라든가 구조라든가 구도는 이런 것은 난 전적으로 마르케스식 소설이 정말 지향해야 할 답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는, 내 생각엔, 일본 소설가들이 시는 말고 정말 좋은 소설을 요즘 특히 만들어내고 있는 거 같아요.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소설들이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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