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 언니와 비교된다고요? 저만의 송화를 봐주세요”

“자람 언니와 비교된다고요? 저만의 송화를 봐주세요”

입력 2010-08-20 00:00
업데이트 2010-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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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 더블캐스팅 차지연

사실 좀 억울하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공연을 봤다는 사람들이야 ‘차지연’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지만, 일반인에게까지 인지도가 높지는 않다. 여기다 출연 작품마다 유명인과 더블캐스팅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열연에 비해 주목도는 다소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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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해도 그렇다.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주연 메르세데스 역이나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에서 출중한 능력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대중적인 관심도에서는 함께 캐스팅된 가수 옥주현(30)과 ‘예솔이’로 유명한 젊은 국악인 이자람(31)에게 밀리는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서편제의 백미, 막판 10분여에 걸쳐 심청가 판소리 대목을 소화할 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내듯 소리를 내고, 그 여파 때문에 커튼콜 때까지 넋 놓은 듯한 품새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혹시 송화처럼 ‘한’이 켜켜이 쌓인 것은 아닐까.

●뮤지컬계에서는 알아주는 디바

지난 18일 서편제 무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차지연(28)은 그런 추측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실 국악이라면 차지연도 뿌리가 깊다. 외조부가 판소리 고법(鼓法) 인간문화재 송원 박오용 선생이다. 어릴 적 외조부 공연 때 북을 직접 치기도 했다.

여자가 타악기를 다루면 무대가 가벼워진다는, 그 시절 남녀차별적인 분위기 때문에 접었지만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덕분에 북 치는 장면에서 장단과 추임새가 무척 좋다. 손목 스냅이 비범하다고 했더니 “송화는 소리를 하는 캐릭터라 북을 너무 잘 치면 안 돼요. 잘 못 치는 척해야 하는데 공연 분위기에 취하다 보니까….”라고는 웃는다.

문제는 소리다. 판소리 대목이 의외로 많아서다. “뮤지컬 곡이 많고 소리는 적으니 걱정 말라.”는 이지나 연출의 ‘꼬드김’에 넘어가 시작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소리는 자꾸만 늘어 갔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젊은 소리꾼 이자람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는 왜 그런 비교당할 역할을 하느냐고들 해요. 이전 작품에서도 그렇고. 그런데 송화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음악에 대한 진정성 아니겠어요. 제가 정성껏 만든 송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해요.” 동료들이야 ‘한 달 반 배운 초보치곤 잘한다.’고 띄워 주지만 준비하면서 스트레스 꽤나 받았던 모양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에휴…. 그러니까 저한테 힘 좀 많이 불어넣어 주세요.”

아주 좋았다고 했더니 “사실 이 작품을 통해서 뭘 더 성취한다거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거나, 소리를 알게 된다거나 그런 목표는 없어요. 저는 그냥 조금 더 현대적인 소리를 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편안하게 하고 있어요.”

잠시 생각에 젖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이렇게 노메이크업으로 (화장 안 하고) 언제 무대에 서보겠어요. 있는 그대로 다 비워내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나 스스로가 깨끗해지는 듯하고 다시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막판 소리 장면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 것 같은데도 극 중 송화의 감정에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환경, 가수가 되고 싶어 서울로 왔으나 몇 번이나 좌절당했던 경험 같은 개인적 감정까지 싹 토해낼 수 있어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단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 버리고 가는 셈. 화장품 광고도 아닌데 숫제 ‘맑게 깨끗하게 자신 있게’ 분위기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을 때 받아준 곳이 뮤지컬”

대사 전달력이나 표현력은 이자람보다 훨씬 더 낫다고 했다. 이간질 작전이다. 금세 눈이 동그래진다. “자람 언니에게 얼마나 배우는 게 많은데요.”

방향을 틀어 차지연을 ‘인신공격’했다. ‘눈 크고 코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적 외모에 172㎝의 키 때문에 동양적인 느낌이 다른 배우에 비해 떨어지는 것 아니냐. 극 중 송화의 귀여운 모습이 연기로는 소화가 되지만 신체조건 때문에 어색해 보인다.’ 집요한 공격에도 돌아오는 답은 무참하게 짧다. “그러게요.”

하긴 무대에서 울부짖을 때나 인터뷰 내내 ‘꺽꺽’ 하고 웃을 때부터 짐작은 했다. “제가 원래 그런 거엔 신경을 안 써요. 여배우니까 가련하게 이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 그냥 속에서 나오는 대로 다 표현하는 편이에요.”

차지연은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초쯤 앨범을 낼 생각이다. 춤이나 다른 장식을 걷어치우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정통 솔(soul) 음악을 선보일 계획이다. 가수로 성공하면 뮤지컬은 부업이 되는 거냐 했더니 정반대의 답이 돌아온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방황했던 시절, 그때 저를 받아준 곳이 뮤지컬이에요. 그걸 잊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가수로 성공하면 뮤지컬 흥행하는 데도 조금 도움 되지 않겠어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8-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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