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100년 대기획] <23·끝>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한·일 100년 대기획] <23·끝>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입력 2010-08-19 00:00
수정 2010-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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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총리 담화 진일보 노력… ‘日강제성’ 명확하게 했어야”

서울신문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신년호에 한완상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을 시작으로 연재한 한·일 대기획이 19일 23회로 막을 내린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다는 취지로 연중 시리즈를 시작했다. 시리즈 연재 중에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 10일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해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 병합은 원천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1000명의 외침을 외면한 담화이기는 하나 새로운 한·일 100년 역사를 열어 나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연 한·일 양국은 새로운 우호협력의 100년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일본 내 시각과 향후 100년의 바람직한 양국관계에 대해 일본 내 한국 전문가 3명의 좌담을 마련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준교수, 마나베 유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오타 오사무 교토 도시샤대(동지사대) 글로벌 스터디스 연구과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은 지난달 30일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연구동에서 진행됐고 간 총리 담화 이후 추가 질문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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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야 다다시 교수  ▲1960년생 ▲일본 호세이대(법정대) 조교수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준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기미야 다다시 교수
▲1960년생 ▲일본 호세이대(법정대) 조교수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준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평가해 달라.

-기미야 다다시 교수(이하 기미야) 무라야마 담화와 동일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을 명기한 것은 일단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한국 정부와 사회가 요구한 것처럼 1910년 한·일 병합에 이르는 조약이 법적으로 무효이고,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점까지는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측의 강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명기하는 편이 좋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담화에서 한·일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강제가 있었다는 것도 포함됐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표현이 애매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의 비판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일본 사회의 여론 동향을 생각하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한 발 나아간 담화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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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베 유코 교수 ▲1963년생 ▲계명대 외국학대학 일본학과 객원전임강사 ▲고쿠시칸대학 21세기 아시아학부 조교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마나베 유코 교수
▲1963년생 ▲계명대 외국학대학 일본학과 객원전임강사 ▲고쿠시칸대학 21세기 아시아학부 조교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마나베 유코 교수(이하 마나베) 간 총리 담화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담화의 답습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내용을 비교해 읽어 보면 ‘자민당적이지 않다’는 점이 공통점일 뿐 결코 답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자폭탄) 피폭국이라는 점을 내세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적극적인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패러다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사할린 한국인 지원이나 문화재 반환 등까지 언급하는 등 아슬아슬한 선까지 표현한 점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한·일 지식인 100명이 “한·일 강제병합은 원천무효”라는 선언을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1000여명의 지식인들이 동참했다. 한·일 병합강제조약의 적법성을 놓고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뜨거운데.

-오타 오사무 교수(이하 오타)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의 핵심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점이다. 저도 이번 공동선언에 서명했지만 이것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다. 지난 2005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새롭게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에는 ‘원천무효(null and void)’라는 것을 한국 측이 1952년 제1차 교섭 때부터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법 이론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 측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맞섰다. 1965년 한·일 국교화 정상화 단계에서는 ‘이미(already)’라는 표현을 넣어 양국 정부가 따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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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오사무 교수 ▲1963년생 ▲붓쿄대학 문학부 조교수 ▲도시샤 대학 글로벌스터디스연구과 교수 ▲고려대 박사(문학) ▲조선현대사, 근현대 북일관계사 전공
●오타 오사무 교수
▲1963년생 ▲붓쿄대학 문학부 조교수 ▲도시샤 대학 글로벌스터디스연구과 교수 ▲고려대 박사(문학) ▲조선현대사, 근현대 북일관계사 전공
-기미야 이 문제에 대해 어쩐지 일본에서는 별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에 의해 병합됐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무효인지, 왜 한국정부나 한국사회가 1910년에 체결된 조약이 무효라는 것에 연연하는지 궁금해한다.

-마나베 한·일병합과 한·일조약의 무효 논란에 대해서는 비록 강제에 의한 불평등 조약이었다고 해도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에 대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하는 논의는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나베 역사인식을 양국이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인식은 각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한국 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1982년 역사 교과서 문제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서는 한·일병합의 악인이라고 알려지고 안중근은 영웅인데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지폐에까지 등장한다. 역사적 진실은 하나일 텐데 말이다. 결국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미야 역사인식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라기보다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 어떤 역사인식을 서로 가지려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일 관계는 일본 측에 힘이 있었다. 당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일컬어지는 1950년대 구보타 발언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상당히 상식으로 통하는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일 관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상당히 대등하게 됐다. 일본 내에서도 역사인식이 변화했다.

→화제를 좀 돌려서 현재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타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소 우여곡절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두터운 관계는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성명을 내거나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은 좀처럼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보도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식민지배가 기인한다. 식민지배 논리에 바탕이 되는 배제라는 논리가 일본 사회에 아직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느껴진다.

-기미야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는 한·일 관계가 배후를 보면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특히 북한에 대한 배제와 차별 분위기가 남아 있다.

-마나베 지난 5월 8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하네다 공항에 한류스타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인 마음속에 한국이라는 울타리가 굉장히 낮아졌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계속 발전해 나가고, 한글을 공부하는 이들도 많이 생겨 80년대 초반과 비교해 한·일 관계가 정말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온도차가 있다. 일본 언론이 광주항쟁 30주년 행사를 한 줄도 전달하지 않는 등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오타 올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양국에서 집회나 심포지엄이 많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은 대단히 낮은 것 같다.

-마나베 도쿄대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 ‘아시아 암 포럼’이라고 하는 특별한 기구가 있다. 특별연구원인 가와하라 노리에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연세대 의대 교수가 동참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난징대학살 당시 군무원으로 근무해 대학살에 가담했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역사적 부채를 유산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화학무기 등에 의해 오염된 중앙아시아 사람들 중 암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과거를 직시해 과거의 아픔을 계속 안고 살아 오고 있는 이들의 삶을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암 포럼이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의 향후 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오타 식민지배 청산의 프로세스를 서로 탐구해 나가는 게 특히 미래지향적인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국이 서로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조사회 같은 것을 만들어 문화재가 반출된 경위 등도 제대로 조사해 식민시대에 부당하게 반출된 것들을 반환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논의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대화할 수 있고,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세계에서도 식민지배를 청산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로,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획기적인 일이다. 식민지배 관계에 있던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미야 앞으로 100년의 한·일 관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균형이 잡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협력이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더욱 많이 인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한·일 협력이 어떠한 형태로 잘 발전해 갈 수 있을지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한·일 공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오타 서로 각급 수준의 교재를 함께 만들고 이를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일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나베 전혀 다른 나라 사이에서 공통의 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조금 무리이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한·일병합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웃 나라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은 교재라면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2010-08-1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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