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의 단란한 한때… ‘체제장벽’ 어색한 순간도

60년 만의 단란한 한때… ‘체제장벽’ 어색한 순간도

입력 2014-02-21 00:00
업데이트 2014-02-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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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들은 상봉 이틀째인 21일 전날의 첫 만남보다 한결 편안한 얼굴로 선물을 주고받고 못다 한 이야기로 혈육의 정을 나눴다.

이날 오전 외금강호텔 남측 숙소에서는 가족별로 상봉이 이뤄져 이산가족들은 잠시나마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남쪽 가족들은 대부분 대형 여행가방 2개에 옷과 의약품, 초코파이, 생활용품 등을 가득 채워 북측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북쪽 가족들은 ‘대평곡주, 평양술, 백두산 들쭉술’이 담긴 3종 술세트와 식탁보를 선물로 가져왔다. 이들은 이 선물을 “수령님(김정은)이 다 준비해줬다”라고 말했다.

김동빈(80) 할아버지는 누나 정희(81) 씨와 동생 정순(58·여), 동수(55)씨에게 “모두 건강해서 기쁘다. 항상 건강하고 통일이 되면 다시 보자”라고 말하며 오리털 점퍼와 부츠 등 선물을 안겼다.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도 아낌없이 풀어서 내줬다. 더 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남쪽 가족들은 “달러를 좀 줬는데 제대로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거나 “선물을 주니 아무말 없이 눈물을 흘리더라”라고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상봉 후 외금강호텔 복도는 북쪽 가족들이 받은 선물 보따리로 가득 찼다. 이 선물들은 한꺼번에 평양으로 보낸 후 각 가족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그러나 6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은 혈육 사이에도 장벽을 놓았다.

일부 남쪽 가족들은 북쪽 가족들이 “체제선전 얘기를 많이 했다”라며 아쉬움과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남쪽 이산가족은 가족별 만남에서 북한 동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은데도 동생은 ‘사회주의’가 얼마나 좋은 체제인지 자랑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듣다못해 동생에게 “정치 얘기는 그만하자”라며 말을 끊어야 했다.

그는 “어제 단체 상봉 때는 조용하던 동생이 개별 상봉에서는 너무 적극적으로 체제 선전을 해 안타까웠다”라며 “동생이 갑자기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라고 토로했다.

그가 선물을 건네자 동생은 “(형님이) 우리 형편이 어려워 주는 선물이 아니라 (형님의) 정 때문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해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다고도 전했다.

또 다른 가족은 “딸이 풍을 맞았다”라며 “안 만나느니 못하다. 오히려 더 가슴이 아프다”라며 가슴을 쳤다.

이산가족들은 오전 9시께 시작돼 11시30분께까지 이어진 개별 상봉 후 점심 테이블에 다시 모였다.

수십년 만의 만남이 가져온 서먹함은 사라지고 서로 음식을 먹여주고 술을 따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점심상에는 대하, 편육, 빵, 포도주, 인삼주 등이 올랐다.

전날 42년 만에 눈물의 상봉을 한 납북어부 박양수(58) 씨와 동생 양곤(52) 씨도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친밀해져 있었다.

두 형제는 40도짜리 ‘평양술’을 잔에 따른 뒤 팔을 걸고 ‘러브샷’을 하고 접시에 서로 음식을 덜어주며 형제애를 과시했다.

양곤 씨는 취재진에 “다시는 만나지 못할 형님을 보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며 “이번에 몸이 안 좋아서 같이 오지 못한 누님이 북쪽의 형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형님 사진을 많이 찍어 보도해달라”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상봉하려던 북녘의 아들이 숨져 손자 광철(31) 씨를 만난 백관수(90) 할아버지도 어제 처음 만난 손자와 애틋한 정을 나눴다.

광철 씨는 백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또 만납시다”라고 거듭 말하며 장수를 기원했다.

북한에 두고 온 딸 명옥(68) 씨와 동생 복운(75·여)·운화(79) 씨를 만난 박운형(93) 할아버지와 동행한 아들 철(61) 씨는 “60년 만에 만난 것도 아주 기쁘지만 이렇게 직접 음식을 덜어주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

점심식사가 시작된 직후에는 전기가 2∼3분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쪽의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현대아산 기술자들이 대기하며 비상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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