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성공 여부·대외관계 의식 가능성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서 과거와 달리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북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은 8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일련의 사정이 제기되어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광명성-3’호 2호기 발사 시기를 조절하는 문제를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발사 시기 조정을 검토하는 원인으로 일단 발사체 결함 등 기술적 문제와 중국,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발 등을 꼽고 있는데 어떤 경우라도 그동안 북한의 태도에 비춰볼 때 아주 이례적이다.
북한은 1998년 8월과 2009년 4월 각각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뒤 발사체의 궤도 진입에 실패했음에도 ‘시험위성’이 우주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지난 1일 로켓 발사를 예고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 1주기(17일)를 맞아 로켓을 발사하는 대내용 측면이 강하고 실제 로켓의 발사 여부와 상관없이 발사 후 주민에게 ‘실용위성이 정상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고 선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발 등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 발사 시기를 재검토한 것이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자주적 권리’라고 주장하며 강행해왔고 특히 중국의 반대에도 대외적으로 발표한 계획을 재조정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가 북한에 신중할 것을 잇달아 촉구하고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를 거론했지만 북한이 로켓 발사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북한의 발사 시기 조정 검토는 이번 로켓 발사를 예고한 후 계속된 차분한 행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로켓 발사를 예고한 뒤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TV 등 대내용 매체에서 관련 내용을 일절 전하지 않았고, 국제사회가 제재를 준비한다고 압박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로켓을 발사하려는 배경 등을 담은 기사를 3건 내보냈지만 지난 4월 발사와 비교하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또 북한은 지난 4월처럼 외국의 전문가와 기자들을 초청하는 이벤트를 마련하지 않았다.
발사 예정기간을 불과 10여 앞두고서야 발사 계획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북한은 2009년에는 로켓 발사를 40여일 앞둔 2월24일 ‘광명성 2호’의 발사를 예고했으며 올해 4월 발사 때는 한달 전에 예고 보도가 나왔다.
이런 북한의 차분한 행보는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를 많이 의식하며 로켓 발사의 성공 여부에 크게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정은 정권이 지난 4월 ‘광명성 3호’를 발사한 뒤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고 인정했고 이번에는 실패를 만회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로켓 발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순히 로켓의 발사에 초점을 두지 않고 성공 여부에도 의미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다른 한편으로 로켓 발사가 단순히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로켓 발사와 관련해 일방적인 도발이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성을 보여주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발사 시기의 검토가 기술적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결정이라면 미국, 중국 등과 관계를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실제로 발사하려는 것보다 국제사회의 반응을 떠보고 향후 협상력을 높이려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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