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이후] 국내외 역대 해군 참사

[천안함 침몰 이후] 국내외 역대 해군 참사

입력 2010-03-29 00:00
수정 2010-03-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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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해군 참사

지난 26일밤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 46명의 승조원이 실종된 것은 해군 참사로는 지난 1974년 이후 최악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대형 전투함이 폭발로 침몰한 것은 처음이다.

1974년 2월22일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해군 수송정(YTL)이 돌풍으로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해군과 해경 훈련병 316명 가운데 무려 159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천안함 침몰은 1967년 1월19일 경비함 당포함(PCE-56) 침몰 사고 이후 5번째다. 당시 당포함은 동해 명태잡이 어로 보호 임무를 수행 중 북한 해안(수원단) 동굴 포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 39명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1999년 6월15일)에서 참패한 북한 해군이 2002년 6월29일(제2 연평해전) 참수리 357정을 기습 공격, 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전사했다. 제1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이뤄진 남북 함정 간 교전이었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동해상에서 심야 훈련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해군 특수목적용 반잠수정이 높은 파도에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 러 사례로 본 침몰사고

지난 2000년 8월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중이던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폭발음과 함께 해저 108m 아래로 침몰했다.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당시 수습한 시신은 12구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 러시아 정부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서방 언론이 처음 사고를 보도한 지 이틀 지나서야 인정했을 정도다. 인접국의 구조 제안도 거부했다.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노르웨이 구조대였다. 사고 직후부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정찰활동을 하던 미군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2년 7월 쿠르스크호의 한 어뢰에서 연료가 누출되면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사고가 나고 1년 11개월이 걸린 셈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잠수함 속에서 얼마나 살아있었는지는 지금껏 논란거리다. 러시아 정부는 낮은 수온과 깊은 수심 탓에 매우 빨리 사망했을 것으로 봤다. 반면 일각에선 생존을 위한 산소가 충분했기 때문에 며칠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르스크호에 탑승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중위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깜깜한 속에서 느낌으로 글을 쓴다.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마지막 메모를 남겼다. 러시아 정부는 인양한 시신을 모두 러시아에 안장했지만 심하게 탄 3구에 대해서는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승무원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0-03-2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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