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58명 ‘천안호 트라우마’ 치유해야

생존자 58명 ‘천안호 트라우마’ 치유해야

입력 2010-03-29 00:00
수정 2010-03-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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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갑작스런 폭발음과 함께 침몰하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58명이 정신적 충격의 여파로 혹시나 모를 고통을 겪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다행히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외상은 없을지라도 사고에 따른 정신적 충격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같은 정신질환이 돼 장기간 피해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이번 사고에서 실종된 박경수(30) 중사는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 총탄을 맞아 부상한 이후 한동안 배를 타지 못하다가 2008년이 돼서야 가족의 도움으로 공포심을 이겨내고 다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또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회 회원 중 70~80%가 여전히 PTSD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난 조사결과가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순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은 물론 함께 근무하던 동료를 잃은 일부 승조원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이들에게 전원 개별 상담과 같은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건국대병원 박두흠 신경정신과 교수는 29일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그 사건을 반복적으로 떠올려 재경험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일 수 있다”며 “급성 상태가 되면 불안,불면,우울 증상이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다시 배 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심하면 교통수단 자체를 피할 수 있다.대부분 이겨내리라 믿지만 일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만큼 상세한 개별 상담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중앙대의대 한덕현 정신과 교수도 “평소에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사건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으면 불안·우울 증상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며 “이는 구조된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 자식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다른 피해자 가족들도 모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는 구조된 사람들이 동료에게 느끼는 죄책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세심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천안호 함장이 언론 브리핑에서 ‘살아 돌아와 면목없다’고 하거나 해군 관계자가 구태여 ‘함장이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함장을 변호한 점 등을 보면 해군이나 구조자들이 스스로 느끼거나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죄책감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연세대 황상민 심리학과 교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타인이 그들을 대하는 시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동료를 살리려 노력하지 못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장애가 더 심해진다”고 경고했다.

 황 교수는 “사회가 이번 사고를 금세 잊고 ‘의미없는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도 장애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미국에서 ‘메모리얼 데이’를 만드는 것처럼 이 사건에 사회가 뚜렷한 의미를 부여하고,해군도 생존자를 영웅화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희대학병원 송지영 정신과 교수도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동료를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큰 문제일 수 있다.이것을 치유할 수 있도록 옆에서 당신이 살아난 것이 절대 비겁한 것이 아니라고 지지해줘야 한다”며 황 교수에 동조했다.

 사고 자체를 떠나 이들이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지닌 점을 치료 과정에서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사회적으로 ‘강함’이 요구되는 집단이기에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특히 당사자가 군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반인보다 스트레스가 덜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후에 증상이 심해질 소지도 충분하다.사회가 이들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건국대병원 박 교수도 “이번 사고는 피해자들이 군인이라 자신이 사고로 약해졌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할 수 있다”며 “상담을 받으면 약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생각하고 고통을 숨길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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