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생 50년… 증권가 ‘부도옹’ 양재봉 명예회장

금융인생 50년… 증권가 ‘부도옹’ 양재봉 명예회장

입력 2010-12-09 00:00
수정 2010-12-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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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별세한 양재봉(梁在奉) 대신증권 명예회장은 여러번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해 금융투자업계의 ‘부도옹(不倒翁)’으로 여겨지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192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전인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사하며 금융업계에 발을 디뎠고,1973년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으며 1975년에는 중보증권(옛 삼락증권)을 인수해 대신증권이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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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명예회장 연합뉴스
양재봉 명예회장
연합뉴스
그는 1980년대 초 시중 금리가 30%대로 치솟을 때 회사채 매매를 통해 체력을 키웠고,1980년대 중반 증시 활황기에 대신증권을 주요 증권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를 세운 것을 비롯해 1986년 대신개발금융,1988년 대신투자자문,1989년 대신생명보험,1990년 송촌문화재단,19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그는 종합금융그룹 소유주의 꿈을 이뤘다.

 1995년의 무차입 경영 선언과 1990년대 후반들어 회사채 대신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수익증권을 중점 판매한 사례,1976년부터 시작된 증권거래 전산화 투자는 고인의 탁월했던 경영 안목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신증권은 재무구조 건실화와 국공채 위주의 상품 구성으로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1997년 금융위기를 무리없이 극복했고 ‘업계 최초’의 증권 전산화 투자로 1999년 이후 온라인 증권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대신증권을 도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경영 이력에는 긴 족적 만큼 굴곡도 많았다.

 양 명예회장이 최초로 시작한 사업인 양조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1977년에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한 지 약 넉달만에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던 박모씨의 ‘투자원금 보장 차용증’ 사태로 인해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부실 계열사를 편법 지원한 혐의가 인정돼 4천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고,2004년에는 차남의 사망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난 뒤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하는 한편으로 별세 직전까지 국내외에서 발간되는 신문과 책들을 정독하는 치열한 모습을 보여 왔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고인이 타고난 성실성을 바탕으로 ‘금융 보국’의 신념 아래 50여년간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끝없는 도전 정신과 열정이야말로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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