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하는 이화학당 출신 며느리 안삼을래”

“체조하는 이화학당 출신 며느리 안삼을래”

입력 2012-08-02 00:00
업데이트 2012-08-0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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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우리나라 신여성 스포츠사 조명

런던올림픽을 맞아 이화여대가 공식 블로그 ‘따끈따끈 이화통신’에 ‘이화에서 거침없이 하이킥! 이화 역사 속 스포츠’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우리나라 신여성의 스포츠사를 조명했다.

1일 블로그에 따르면 1892년 이화학당 제3대 당장에 취임한 조세핀 오필리아 페인이 본 한국은 유교적 분위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운동을 접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면역력과 체력이 약해 전염병에 쉽게 감염돼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았다.

여성의 체육활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이화전문학교(현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여고보 농구대회가 1935~1936년에 열렸지만 일제의 제지로 중단됐다. 당시 농구경기에 나선 여학생들이 다리가 드러난 반바지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화여대 공식 블로그
여성의 체육활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이화전문학교(현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여고보 농구대회가 1935~1936년에 열렸지만 일제의 제지로 중단됐다. 당시 농구경기에 나선 여학생들이 다리가 드러난 반바지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화여대 공식 블로그
●1910년대 들어서야 치마 입고 농구

페인 당장은 체력을 기르면 질병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여학생들에게 체조부터 가르쳤다.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몸동작을 최소화한 체조였다. 그게 문제가 됐다. 이런 사실을 안 시민들 사이에 “이화학당 출신은 며느리로 삼지 않겠다.”는 말이 퍼진 것.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딸을 빼내 집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페인 당장은 고종이 1895년 ‘덕(德)·체(體)·지(知)’ 3대 교육강령을 담은 ‘교육입국조서’를 공표할 때까지 온갖 반대에 직면했다.

●1920년대 항아리 모양 반바지 입고 스케이팅

1910년대에 들어서야 여학생의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 이때 비로소 여학생들은 농구, 정구 등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치맛자락 때문에 빨리 달리기는커녕 뛸 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려 어려움을 겪었다. 보다 못한 진네트 월터 선생이 어깨에 끈을 단 ‘어깨허리’ 치마를 고안해 냈다. 이 치마는 전국적으로 보급돼 현재의 한복 치마 원형이 됐다. 그로부터 10여년 후에는 반바지가 도입됐다. 1920년대 여학생들은 저고리에 항아리 모양의 반바지를 입고 농구도 하고 스케이트도 탔다. 종아리를 드러내는 게 수치스럽다며 수건으로 다리를 감싸는 여학생도 있었다.

여성의 권위가 확대되면서 1930년대에는 이화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졸업반끼리 정구 시합도 하고, 전국여고보 농구대회도 열렸지만 일제가 방해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다 광복 후인 1945년에야 이화전문학교에 국내 최초로 체육학과가 개설됐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2012-08-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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