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울음이 들려요” 살처분 공무원 트라우마 호소

“오리 울음이 들려요” 살처분 공무원 트라우마 호소

입력 2014-02-20 00:00
업데이트 2014-02-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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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자리에 들면 오리가 ‘꽥 꽥’하며 우는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따라 닭과 오리 130만여 마리의 살처분에 나선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 공무원들이 정신적 장애인 트라우마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살처분현장에 세 차례 투입된 음성군 공무원 A(28·9급)씨는 20일 공무원노조를 찾아가 살처분 이후에 겪는 고통을 털어놓았다.

A씨는 “오리 살처분을 다녀온 뒤 밤에 혼자 있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끔찍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꽥 꽥’하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다 보니 닭이나 오리, 돼지 등 가축을 도살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살처분 경험을 하다 보니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가 어렵다”고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했다.

음성군 공무원노조 이화영 지부장은 “지난 2일 대소면의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뒤 살처분에 참여했던 공무원 20명가량이 노조를 방문해 살처분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농촌 경험이 없는 젊은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가금류 76만여 마리를 살처분한 진천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부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다녀온 뒤 두통과 몸살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일에는 주민복지과의 정모(41·7급)씨가 퇴근을 하다 집 앞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공무원 노조는 “멀쩡한 동물학살에 동원돼 후유증과 트라우마 증상에 시달린다”며 “(공무원들은) 순서가 되면 언제든지 살육현장으로 달려가 (오리·닭을) ‘학살’한 뒤 돌아와 밀린 업무를 하고, 감기 기운이라도 느끼면 (AI에 감염될까)불안해하고 있다”는 대자보를 19일 군청 게시판에 내걸었다.

충북 재난심리지원센터에도 살처분에 참여했던 3명이 후유증을 호소해 정신 상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센터는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과 농민 등을 대상으로 한 상담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음성·진천지역에서는 19일까지 96만여 마리를 살처분했고, 22일까지 34만 마리를 추가 살처분할 계획이다.

그동안 살처분에 공무원 1천270여명을 비롯해 2천120여명이 동원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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