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해양경찰청장의 쓸쓸한 퇴장

‘마지막’ 해양경찰청장의 쓸쓸한 퇴장

입력 2014-11-18 00:00
업데이트 2014-11-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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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 부실 책임…김석균 해경청장 1년8개월 만에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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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해양경찰청장의 쓸쓸한 퇴장
‘마지막’ 해양경찰청장의 쓸쓸한 퇴장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월호 수색종료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이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김석균(49) 해양경찰청장이 18일 퇴임식을 열고 취임 1년8개월 만에 해경청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해경의 부실한 구조 역량에 책임을 지고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했지만 실종자 수색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정부 주문에 따라 청장직을 유지해 오다가 19일 국민안전처 출범에 따라 퇴임했다.

1953년 해경 창설 후 61년간 해경청장은 모두 46명이지만 김 청장은 해경 해체에 따라 ‘마지막 해경청장’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지니게 됐다.

김 청장은 작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첫 해경청장에 임명될 때만 해도 숱한 화제를 뿌렸다.

2006년 권동옥 전 청장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해경 자체 승진으로 청장에 오른 데다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1만 해경의 수장이 됐다는 점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행시 37회 출신 중 차관급 직위를 꿰찬 선두주자이고 2005년 국내 처음으로 해적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첫 ‘해적 박사’라는 점도 부각됐다.

취임 초기 ‘김석균호’는 순항하는 듯했다.

취임 일성으로 “안전한 바다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김 청장은 해양사고 30% 줄이기 사업을 적극 추진했고 취임 1주년 기념식 땐 실제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해경은 그토록 부르짖던 안전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경비정은 선장·선원 구조에 급급한 나머지 선체 내부 승객의 탈출을 유도하지 못했다.

해경이 운영하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하고 조류를 따라 떠밀려가는 비상 상황이 이어졌음에도 이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수색 현장에서는 민간 잠수부와의 불협화음으로 수색작업이 지연되면서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타들어가게 했다.

해경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일순간에 분노로 바뀌었고 바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김 청장 역시 비난의 중심에 서야 했다.

김 청장은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비난을 감수했다.

사고 초기부터 최근까지 약 6개월간 진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진도군청 임시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실종자 수색작업을 지휘했다.

정부의 수색 중단 발표가 있던 지난 11일에는 실종자 가족과 일일이 포옹하며 아쉬운 이별을 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경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 해체 방침을 밝힌 날 김 청장이 서둘러 조직 해체를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밝히는 등 조직 회생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이날 해경청 앞에서는 시민단체 회원 10여 명이 해경 해체의 책임이 있는 김 청장은 퇴임식을 할 자격이 없다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김 청장은 퇴임사에서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로 빚어진 결과”라며 “그러나 해경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구조 역량을 강화하는 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국민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임사를 읽던 중 몇 차례나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하던 김 청장은 “해양경찰이여, 영원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외치고 직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17년간 정든 해경청사를 떠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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